매일 반복되는 듯한 월급쟁이 생활이 지긋지긋해 그만둘까 하다가도, 때때로 신선한 자극을 받아 새로운 힘을 얻곤 한다. 승진이 더디고 (언젠가 세계은행 직원들은 80% 이상이 처음 들어올 때 직급에 머문 채로 세계은행을 떠난다고 했다), 정체된 듯한 직장생활에 무력해지는 직원들을 위해 오늘 직장에서 커리어 포럼을 열었다. 여러 부서들이 부스를 만들어 서로 하는 일을 알리기도 하고 각 부처 부사장 및 디렉터들이 주제토의 및 강연을 했는데, 그중 내가 근무하는 재무부서로 가장 최근에 디렉터로 부임한 마르셀로의 강연이 인상 깊었다.
‘가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그 강연의 요지는 예전엔 가난의 문제를 가난한 사람들을 그룹으로 묶어서 해결하려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세계은행의 지원도 정부를 도와 학교를 짓고 병원을 짓고 도로와 댐을 건설했지만, 그 지원의 결과는 권력을 쥔 자들을 더 부패하게 할 뿐 그 문제의 근원을 해결해 오지 못했다. 2014년에 발간된 그의 책 “경제개발: 누구나 알아야 할 것들 Economic Development: What Everyone Needs to Know”을 기반으로 테드톡(TedTalk)에도 2014년 10월에 그 엑기스만 들려주었는데, 그의 답은 ‘가난한 개개인, 그 이름을 기억하고 그에게 직접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우연히도 같은 날,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기본생계보장을 위한 지원에 대한 논쟁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인도에서 2011-14년 동안 마디야 프라데쉬 라는 지역에서 시범프로젝트로 6천 명에게 직접 생계비를 지원하였는데 정부를 통한 지원보다 훨씬 효과가 컸다. 기본생계보장을 위한 지원 시도는 인도뿐 아니라 캐나다, 핀란드, 네덜란드, 심지어 미국 내 알래스카 및 캘리포니아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뉴욕에 기반을 둔 자선단체 ‘GiveDirectly’는 중간에 누구도 거치지 않고 케냐의 마을 빈민에게 모바일 폰 송금으로 매달 22달러씩 직접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난민이나 이민 문제도 그렇다. 언젠가 트럼프가 이민 문제로 벽을 짓겠다고 하니 어떤 이가 “바다로 오는 사람들은 어쩌고 벽만 지으면 되겠느냐”라고 하자 한 지인이 “시리아 난민의 배가 뒤집어져 난민이 모두 물에 빠져 죽은 일이 있었어. 트럼프가 그렇게 싫어하는 이슬람 사람들은 수영을 못하니까 바다는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지”하고 농담을 했다. 2011년 1월, 아랍의 봄이 시작되기 전 예멘에 출장 갔을 때, 2500년도 더 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도 사나(Sana’a)를 둘러보고 그 아름다움과 사람들의 친절함에 감동했었다. 그 아름다움과 그곳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는 나는 농담으로 던진 그 말에도 마음이 아팠다. 난민이나 불법 이민자나 개인의 얼굴이나 이름은 잊혀진 채, 한 문제의 그룹으로만 인식할 때와 그 개개인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문제를 대할 때 그 해결 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모든 인간 세상의 문제는 각 개인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접근해야 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모두가 서로에게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 온 세상이 꽃밭과 같기를 그려본다.
<송윤정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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