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한 직장동료가 찾아왔다. 2015년 암 진단을 받은 그녀의 언니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 재발한 암이 온몸에 심각하게 전이되어 강한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머리카락을 모두 잃었다고 했다.
호주에 이민 가 살던 그녀의 언니는 동남아에 있는 고국으로 돌아와 치료 중인데, 여름에 방문할 예정인 자신에게 진짜 머리로 만들어진 가발을 하나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항상 멋쟁이였던 자기 언니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을 놓지 못하는 듯하다고 덧붙이며, 그녀는 내게 머리카락 기부와 가발에 대해 물었다.
나는 한 이년 전부터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다. 그전에는 머리털이 목을 감싸면 답답해 견디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일 년에 두 번씩 잘라냈었다. 턱선 정도 단발머리에서 어깨 정도에 닿을 즈음 되면 어김없이 미장원에 달려가곤 했다.
수년 전 직장에서 한 동료가 허리까지 닿던 머리카락을 짧게 자라낸 모습을 보고 이유를 물어, 그녀가 머리카락을 기부했다는 것을 안 후 ‘나도 언젠가는 꼭 내 머리카락을 길러 기부를 해야지!’ 했었다.
그래도 머리카락이 답답해 못 견뎌 기르지 못하다가, 흰머리를 뽑아내기 시작하며 이제 못하면 영영 못하리라 생각하며 시작했다. 흰머리가 5% 이상이면 기부를 받지 않는다고 하기에.
직장동료의 고국엔 아직 머리카락 기부가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은 어떤가 싶어 찾아보니,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웹사이트에 상세히 안내와 과정이 설명돼 있는 것을 보고 흐뭇했다.
한국에선 2014년 1월 3일에 당시 이미 7년간 이·미용 업계의 자발적 참여로 진행해 온 ‘소아암 어린이를 위한 사랑의 머리카락 기부운동’을 범국민 운동으로 확대하기 위해 ‘어머나 운동본부’를 공동으로 설립해 출범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시작한 새마을운동을 아프리카와 동남아지역에 보급시켰듯이 이 머리카락 기부운동도 동남아지역에 그 기술을 전파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한국에서 이런 머리카락 기부단체가 언제 생겼나 찾다가, ‘8세 소년, 머리카락을 기부하기 위해 2년간 괴롭힘을 견디다’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2015년 플로리다에서 당시 8세의 한 소년이 2년간 머리를 길러 기부했는데, 그 2년간 또래 아이들의 온갖 조롱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이 왜 머리카락을 기르는지 설명했다고 한다.
결국, 그의 머리에서 10인치가 넘는 금발 머리카락 4묶음이 자선단체에 기부됐다.
여섯 살부터 온갖 수모를 견디면서도 이 일을 해낸 소년의 사진을 보며, 흰머리가 나서야 인생의 마지막 기회로 실천하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늦게나마, 기부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기르면서 병마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또 병마에 지지 않고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의 고귀함을 기억할 수 있다.
올 12월쯤이면 내 머리카락도 단발로 자를 때 10인치는 되지 않을까 싶다.
올 크리스마스 즈음에 나와 함께 기부하겠다고 이미 긴 머리를 여전히 기르고 있는 딸아이와 함께 미장원에 가리라. 내 머리카락이 가발로 만들어져서 그 누군가에게 소망과 기쁨을 안겨줄 수 있기를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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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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