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에 접어들었다. 한국의 세계적인 피서 음식으로는 냉면을 으뜸으로 꼽지만 좀 더 서민적인 비빔밥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이열치열이라 하여 한여름에 삼계탕, 보신탕, 곰탕을 즐겼지만 냉동시설, 에어컨, 선풍기가 일반화되고 아이스크림, 빙수 등 냉동식품에 단련이 돼서 인지 탕 종류를 자주 먹자니 뭔가 모를 격세지감이 밀려온다. 우리 비빔밥 그릇을 상위에 차려놓고 보면 다채로운 내용물과 색깔의 조화가 한껏 풍요로움과 만족감으로 미각을 선동한다.
질서 있게 갖가지 나물들을 그릇 안에 준비해 놓고 계란 후라이를 얹으면 영락없는 한 폭의 그림이다. 푸른색, 노란색, 붉은색, 초록색, 주황색, 갈색 등 그 안에 담긴 갖가지 음식들이 반 고흐의 황금빛 그림이나 클로드 모네의 푸른색, 그리고 램브란트의 밝은 빛 화폭을 떠 올리게 만든다.
어디 그 뿐이랴, 우리 비빔밥에는 최고의 영양가가 듬뿍 담겨 있단다. 시금치의 철분, 도라지의 인사포닌, 버섯의 비타민B, 튀각의 칼륨, 칼슘 거기에 아쉬워하지 말라며 소고기 볶음이나 계란 노른자가 단백질을 장담하고 있다. 그리고 비빔밥 그릇 옆에는 소화를 돕기 위해 맑은 국을 준비해 놓는다. 비빔밥의 역사는 조선 초기부터의 음식 내용을 정리한 1800년대 말엽에 발간된 ‘시의 전서’에 최초로 등장한다.
이 기록에 의하면 비빔밥은 산신제, 동제에서 유래했다거나 음식 남긴 채 정월 초하루를 맞지 않으려는 옛사람들이 남은 음식들을 함께 모아 비벼서 먹었다는 설도 있고 들에서 농부들이 새참으로 포만감을 채우기 위해 즐겼다는 설이 있다. 미국음식 샌드위치나 햄버거, 일본음식 돈부리나 찌라시 등 내세워봤자 우리의 비빔밥 맛에 비교하면 ‘족탈불급’이다. 동양의 음식 문화가 제일 발달되었다는 중국음식에도 비빔밥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음식은 일품요리가 대부분이다. 서양요리도 ‘알 라 카르트’ 중심이다.
엉뚱하게도 비빔밥을 먹다가 몇 번인가 세동대왕 어른이 비빔밥을 자주 드셨다면 좀 더 오래 사시고 나라와 인류를 위해 더 큰 공헌을 세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념에 빠질 때가 있다. 세종대왕은 채식을 즐기지 않으셨고 고기가 없으면 수라를 들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육류만을 편식하며 당시 지도자의 필수 과목인 승마, 활쏘기, 사냥을 멀리 하였으니 평생을 소갈증(당뇨병)에 시달렸다는 자신의 고백(이조실록)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세종은 1450년 54세로 승하하셨다. 여섯 명의 부인에게서 18남4녀을 두었다.
우리 모두가 아시다시피 세종대왕은 건국이래 최고의 명군이다. 40대 중반에 시력이 극도로 악화된 후에도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하였고 각종 과학문명 기기를 발명하여 우리는 물론 세계 인류사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현재 한반도의 북쪽 국경 압록강과 두만강의 경계선도 그가 확보했다.
김종서로 하여금 북쪽의 말갈족, 여진족을 물리치고 육진을 구축하고 남쪽으로는 대마도를 정벌하고 이종무를 보내 도주로 삼았다. 강대국들의 간섭과 농락에 시달리는 요즘 한반도의 형편을 생각할수록 세종대왕이 뼈저리게 그리워진다. 비빔밥을 조금만 더 자주 드셨더라면 소갈증을 회복하고 좀 더 오래 사셨을 것을... 세종대왕은 세계 최초의 여론조사를 실천했던 분이다. 토지에 관한 조세법을 가지고 8도에 명하여 찬반을 물은적이 있다.(이조실록) 만백성과 함께 나라를 운영하는 그야말로 비빔밥 정신이다.
비빔밥은 역사나 내용이나 형태로 보아 가장 민주적 철학과 소신이 담긴 음식이다. 각종 부정, 비리 연루자를 무작정 임명강행하는 정치 그리고 만백성의 자유를 짓밟는 독재정치 이 모두가 비빔밥에 내포되어 있는 민주정치 철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남북분단도 비빔밥 철학의 결여에서 빚어낸 결과가 아닐런지. 무더운 한여름 비빔밥 피서를 즐기면서도 부끄러운 세태가 떠올라 아쉬움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한사람 만의 감정일까.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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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자유광장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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