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간 12,410일을 근무했다. 참고 인내하면서 공직생활을 드디어 끝마쳤다. 34년전 미국 온지 일주일 지나고 근무를 시작했다. 시차도 바뀌지 않은 상태라서 그랬는지 머리가 멍하면서 늘 졸린 것 같았다. 그리고 부족한 영어 실력에 늘 긴장하는 마음으로 진땀을 뺐다. 지금 생각하면 창피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일 하면서 휴지가 필요했다.
생각 없이 화장실 휴지를 책상위에 멋지게 올려놓고 사용했다. 같이 일을 하던 직원들 눈에 거슬렸던 것 같았다. 그 이튿날 책임자가 책상에서 쓰는 휴지로 대치해 주었다. 조금 창피했다. 말하는 것도 숨도 안 쉬고 내 뱉는다. 발음과 문장도 못 알아들었다. 모든 것들이 힘들었고 어려웠다.
시간과 세월이 흘러가니 미국에 대한 모든 것들을 자동으로 알게 되었고 모든 일에 익숙해져 갔다. 또 미국 공무원으로서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더 노력하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늘 시간표를 만들어 영어공부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 컴퓨터 배우는 것도 열심히 했다. 모든 교육 있을 때 마다 빠지지 않고 배웠다. 차차 배움으로 인해 하는 일들이 쉬워져갔다. 또 대화와 알아듣는 것도 무난히 지나갔다.
그렇게 생활을 하면서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늘 머리속에 떠나지 않았다. 일을 끝마치면 야간대학을 찾아서 영어를 열심히 배우러 다녔다. 익숙해져가는 영어 실력은 늘었다. 그럴 때마다 진급을 생각하게 했다. 살며시 인사과를 거쳐서 높은 급수를 찾았다. 이력서를 내고 인터뷰를 통해서 합격했다는 통지서를 34년간 근무하면서 여러 번 받았다. 진급하는데 늘 온 정신을 기울였었다. 원하는 대로 일이 잘 진행되어 갔다. 그럴 때 마다 자화자찬을 했다. “형자! 너! 잘했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성실하게 열심히 일을 했다. 상사와 직원들에게 사랑도 많이 받았다. 펜타곤 주차장에서 사무실 입구까지 걷기에는 매우 멀었다. 자전거를 항상 밴에 싣고 다녔다. 허리에는 핸드백을 질끈 둘러메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자전거로 사무실 입구까지 달려가기도 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폭풍이 불 때도 빠지지 않고 착실하게 출근 했다. 395도로는 차가 막혀 두 시간씩 길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소변을 참지 못해 두부 통에 실례를 해 가면서 출근도 했었다.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아픈 기억도 있다. 2001년 9월11일 악몽 같은 911테러사건이 있었던 날이다. 펜타곤에 비행기가 떨어진 장소는 내가 근무했었던 사무실이었다. 911 테러사건은 내가 다른 곳으로 사무실을 옮긴 후에 일어났다. 하나님이 도우셨다. 젊었을 때 퇴직은 나에게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점차 퇴직을 생각하게 되었다. 퇴직하는 날 온 직원들이 한국식당에 참석하여 큰 축하를 베풀어 주었다. 상금과 꽃다발, 선물과 메달, 감사장 등이 손과 가슴에 듬뿍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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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자 윤동주 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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