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어떻게 견디지”.
여러 일들이 엉키고 설킨 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종종하는 말이다. 이들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은 ‘오늘’이다. 오늘 겪은 모욕이 가장 참기 어렵고, 오늘 느낀 슬픔이 가장 크다. 어제까지 잘 짊어지고 견뎌왔던 짐들도 오늘은 더 이상 메고 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을 바라보고 산다. 내일이면 자동차 할부금도 다 갚고, 내일이면 보기 싫은 시누이도 시집을 가고, 내일이면 이 직장을 떠나 내 사업을 차려보고. 내일이면, 내년 봄이면, 3년 후면 이 짐이 좀 가벼워지겠지, 기대하면서.
기억 나시는지. 오늘은 어제 그렇게 바라던 내일이었다. 10년 전의 나는 아이의 기저귀 가방을 챙기며 이 아이가 걷고 뛰게 될 날을 고대하지 않았던가. 지난 가을의 나는 지독한 감기에 시달리며 이 몸살만 나으면 날아갈 것 같으리라 생각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어제의 나는 ‘내일은 열심히 살아보리라’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었다.
사람들은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길 다르게 태어났다. 부모도 성별도 생김새도 다르다. 능력치도 다르고 따라서 얻어지는 경험치도 다르다. 불공평한 이 세상에서 공평한 것은 단 하나 ‘시간’ 뿐이다.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건강하거나 병들었거나 하루는 24시간이다. 그것이 어찌 사람에게 뿐이랴. 세상 모든 만물에게, 매 시간 자전을 멈추지 않는 지구에게도 오늘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별천지, 신세계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 매일 매시간 인간의 생물학적 시계 속에서 우리의 세포들은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한다. 각 세포가 맡은 역할에 따라 걸리는 시간이 길고 짧을 뿐, 몸의 세포 주기라는 관점에서 볼 때 오늘의 나는 일주일 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생물체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약점과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걱정을 일으키는 우리의 환경은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어려움에 맞서는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는 다른 새 사람이다. 새 사람인 나는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오늘이라는 새 날과 만난다.
미국 속담에 ”늙은 개에게 새 기술을 가르치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이미 한가지 사고방식이나 삶의 양식을 몸에 익힌 사람이 그것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감정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나 환경 속에서 세상과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키우거나 우울함에 빠져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속담에 공감할 것이다. 우울과 분노로 향하는 길은 잘 닦여진 사차선 도로처럼 마음 한 가운데 놓여있어서, 그 생각의 흐름을 틀어 놓으려면 고속도로 공사를 하는 것 만큼이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오늘도 역시 이 우울하고 부정적인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리란 생각에 절망스럽다면, 기억하시길. 당신은 오늘 새로 태어났다. 세상은 당신이라는 사람을 처음으로 대하는 것이고, 당신은 세상과 처음으로 맞선 것이다. 어린 아이가 세상을 탐색하듯 조심히 천천히, 어제보다 한 걸음만 더 나서면 된다. 혹 어제로부터 한 발자국도 멀어지지 못했다면, 심지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더라도, 뭐 어떤가. 오늘의 후퇴는 내가 어떤 상황일 때 더욱 우울해지는지 내게 알려줄 것이다. 잘 물러섰다. 당신의 오늘은 좋은 하루였다.
새해 첫 날을 이미 한달 여 지나 또 새해가 온단다. 세상은 매일 매일 새로워진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세상에는 저마다 다른 설날들이 여남은 개나 존재한다. 카자흐스탄의 설날은 3월에 있고, 유대인들의 설날은 9월에 온다. 혹 지난 1월 1일에 작심했다가 삼일 만에 끝난 결심이 있는가. 이제 또 다시 작심해 보자. 또 삼일 만에 끝날 거라고? 그럼 또 작심하면 된다. 어차피 세상도 나도 매일이 설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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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희 상담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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