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톨릭 신부이자 저명한 종교철학자 차동엽 박사는 인간과 종교, 그리고 신앙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죽음이라는 유한성(Finity)을 가진 고대의 인간은 죽음과 두려움이 없는 무한성(Infinity)을 동경하기 시작하고 천재지변이나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경험하면서 이들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의 존재가 있을 것이라 또한 믿기 시작하면서 큰 산, 바위 또는 커다란 나무에게서 무한한 힘이 있음에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지면서 이들에게 이름을 붙인 것이 신(神)이며 이를 믿고 의지하는 지극히 샤머니즘적인 형태의 종교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과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좀 더 과학적인 모습으로 변한 것이 오늘 날의 종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여러 개의 종교라는 채널을 통해 신앙이라는 수련과정을 거쳐 신의 무한성에 도달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겨난 종교들의 내건 슬로건들은 사랑, 평화, 자비, 인의(仁義)같은 최선(最善)의 진리를 자처하는데 인류의 역사를 보면 종교 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오늘날도 특히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팽배해진 분규는 일촉즉발의 전쟁에 직면해있다. 왜 종교 간에 전쟁이 있게 되는 것일까?
어려운 화두지만 많은 시간을 갖고 생각한 결과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주관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오늘 날의 종교는 각자가 하나의 단체를 형성하고 그 단체마다 종교 본연의 표방하는 진리와 별도로 같은 생각을 가진 부류가 모여 이념을 만들어 내고 그 안에 종사하는 수많은 이해집단이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나아가 그 세력을 넓히려는 공통된 생각을 갖고 있음으로 종교 간의 분쟁이 필연적이 된다는 이론이다.
나아가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경전이 배타적, 독선적 사상을 노골적으로 얘기하고 있으니 이를 읽는 일반 신자들 자체도 다른 종교들에 대해 배타적, 독선적 시각을 갖게 되는 것도 종교 간의 분쟁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자기가 속한 종교 안에서 나와 밖에서 자신의 종교를 들여다보는 시각을 가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종교의 경전들을 아무리 훑어 봐도 찾을 수 없는 기복신앙을 당연한 것으로 믿고 매일 매일 새벽 기도하는 자신은 아닌가? 오만에 찬 자신의 무지(無知)를 무지인지도 모른 채 그 무지를 믿고 있지는 않은가?
위 질문의 모든 것들이 종교를 따르는 일반인은 물론 성직자, 종교단체, 나아가 종교 전체의 문제점이 되고 이 문제점들이 종교 이익단체들의 이념 속에 묻힌 채 종교 간의 분쟁은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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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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