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창밖을 무심히 내다보니 뒤뜰 한쪽에 무성하게 자란 부추가 보였다. 어머님 생전에 매일 부추 밭에서 잡초를 뽑으시고, 정성스레 물을 주시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한동안 그곳에 가면 그리움의 눈물이 날까 가지 않았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님의 마지막 선물인 것을…
싱싱하게 잘 자란 부추를 왜 안 먹느냐고 꾸중하시는 것 같아 소쿠리 옆에 끼고 부추 밭으로 향했다. 몇 년 동안 관리를 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쩜 그렇게 싱싱하게 잘 자라주었는지… 향긋한 부추 향 속에서 키다리 아저씨처럼 큰 싱싱한 부추를 소쿠리에 담고 보니 한 아름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받은 만큼 주고 싶은 마음에 식구들이 좋아하는 부침개를 만들기로 하고 부추를 좋아하는 친구도 생각나 오라고 전화를 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부추를 듬뿍 넣은 밀가루 반죽을 한 국자, 한 국자 넣을 때마다 향긋한 냄새에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까지 더해져 다 부쳐 놓고 쟁반 가득 담겨있는 부추부침개를 보며 어머님께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느꼈다.
맛있는 냄새가 난다며 들어오는 남편에게 따뜻한 부침개를 접시에 담아주었다. 기분 좋게 한 조각 먹더니 “그 동안 관리를 안 해서인지 좀 질기네” 라며 접시를 밀어냈다. 하교 후 돌아온 딸들에게 너희들이 좋아하는 한국 피자 많이 만들었으니 빨리 먹으라고 주니 좋아하며 한 조각 베어 물더니 지금 배 안 고프니까 나중에 먹겠다고 한다.
왜 그럴까? 다들 좋아해서 충분히 만들었는데 하며 한 입 먹어보았다. 그런데 정말 남편 말대로 너무 질겨서 껌을 씹는 느낌이었다. 때마침 부추를 좋아하는 친구가 집에 왔다. 산처럼 부쳐 놓은 부추 부침개를 보며 덥석 입에 문 순간 “헉, 이거 부추 맞아? 잡초도 섞인 것 같은데…”한다. 어떤 것을 잘랐냐고 묻는 말에 키가 큰 부추를 가리키니 그건 ‘잡초’라 하며 배를 잡고 웃는다. 아뿔싸! 크게 자란 것도 싱싱한 것인 줄 알고 잡초도 자른 것이었다. 분명 어머님이 설명해 주셨을 텐데 허투루 들었기 때문이리라.
식구들 생각하며 열심히 만들었는데, 산처럼 쌓인 부침개를 못 먹고 다 버려야 된다고 생각하니 속상했다. 한편으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 좀 더 세심하게 신경을 안 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밟아도, 밟아도 끈질기게 살아 솟아오르는 잡초. 돌보지 않은 밭에는 잡초만 무성하듯,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보란 듯이 당당히 고개 들고 있는 잡초처럼,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이고,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량한 인생의 들판에 잡초를 조금씩 뽑아내고 정돈된 삶의 밭을 일궈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부추 부침개 먹을 생각에 잔뜩 기대하고 온 친구는 덕분에 잡초 제거 안 하고 진짜 부추를 한 바구니 담아간다며 웃는다. 잡초 섞인 부추 부침개를 쓰레기통에 넣으며 아까웠지만, 엄마 속상할까 봐 나중에 먹겠다고 배려한 딸들의 모습에서 많이 컸구나 라는 생각도 들어 고마움이 느껴졌다.
어머님이 마지막까지 정성스레 가꾸신 작은 부추 텃밭의 추억이 얼마나 큰 사랑과 선물이었는지, 새삼 어머님이 그리워지는 4월의 봄날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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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희 포토맥 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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