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메모리얼데이의 날씨는 아침부터 잔뜩 흐려서 간간히 안개 비가 한적한 하이웨이를 달리는 차창의 시야를 가렸다.
비가 오면 안되는데 하는 마음으로 메모리얼 데이 퍼레이드 참가를 위해 노병들은 약속한 장소에 모여서 부대기를 서로 점검하며 김밥으로 아침 겸 점심을 대신했다.
죽음이 노려보는듯한 대낮에도 컴컴한 정글 속에서 철모를 깔고 않아 일곱명씩 교대로 시레이션을 따먹던 기억이 새롭다. 전우들은 모두 초등학교때 소풍이라도 가는듯한 얼굴로 5대의 차량에 나누어 타고 DC로 향했다
퍼레이드 주최측에서 제공한 연방 정부 건물 지하 주차장 입구에서 차량마다 폭발물 검사를 마친후 퍼레이드 집결지인 몰까지 여러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받으며 3마일 정도를 자유스러운 행진으로 도착했다.
우리 앞에는 아오자이를 입은 여자들과 우리보다 젊은 사람들로 구성된 베트남 팀이 있었고 우리 뒤의 팀들은 18시간을 쉬지 않고 운전하며 올라 왔다는 텍사스와 아칸소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촌 도시 텍사카나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마칭 밴드가 연습을 하고 있었다.
출발을 기다리는 도중 베트남 팀들이 반갑게 악수를 청하며 우리 전우 모두에게 점심 공양을 제공했다. 공양을 받으면서 사실 내 개인으로서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 빚을 지고 사는 느낌이 든다.
남의 나라 독립 전쟁에 그 나라의 국민들과 우리와 같은 젊은이들을 아무 이유없이 자유와 정의를 핑계로 그 얼마나 많이 살상을 했나. 그들의 피로 얼마나 많은 훈장들을 챙겼나.
나는 정말로 정의와 자유를 위하고 대한민국을 위하여 그들의 나라에 가서 스스로 싸웠나? 내 스스로 나에게 묻고 다짐하는 질문의 정답은 아마도 아니다로 끝을 맺을 것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나는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하여 정글 속에서 칼을 갈고 대한민국과 우리들에게 아무 원한이나 상관이 없는 그 나라의 국민들과 젊은이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린 전우의 살과 뼈를 뜯어 내려야 했나를 생각할 때 나는 이미 자랑스러운 파병 용사가 아닌 부끄러운 파병 용사가 먼저였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의 온 동네 잔치 하는 노래가 부끄럽고 괴롭게 했다. 그러한 껄끄러운 마음은 5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마음 한구석 음침하고 컴컴한 미로 속으로 나를 잡아 당겨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어쨌거나 20대 초반이었던 전우들은 가을 독사가 먹이를 찾아 풀 섶을 뒤지듯 한 달 가까이 젖은 군화를 벗을 시간도 없어 발바닥 금이 불어 터져 피가 나오도록 정글과 굴속의 적을 찾았고 눈앞에 어른거리는 움직임은 모두 죽여야만 했던 ‘무적의 사나이’들이었던 우리들은 이제는 모두 활처럼 등이 휘어가고 허연 머리칼은 바람에 날려 ‘보무도 당당히’라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 됐다.
그렇지만 얼굴들의 표정만은 그 옛날의 당찬 모습들이 남아 있어 그저 고맙기만 했다.
어디 그뿐인가 산악회를 이끌고 있는 이 병장은 의사가 권하는 치료도 뒤로 미루고 새벽에 침을 맞고 안마를 받아 퍼레이드를 위해 분주히 전우들을 챙기는 모습은 희생과 봉사 그 자체였다. 전우회 회장 안 병장과 이 병장의 리더십은 모내기를 하는 일꾼들을 챙기듯 하여 전우들로 하여금 모두 고마움을 느꼈으리라.
우리는 본격적인 퍼레이드를 시작할 무렵 사열대 앞에서 회장의 구령 “받들어 총”에 맞춰 모든 부대기로 경례를 하여 사열대의 VIP들과 좌우에 가득한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고 행진 도중에도 서로 서로 거수경례를 주고받으며 어깨가 아프도록 손을 흔들어 약 3마일 정도의 퍼레이드를 마칠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움은 베트남참전전우회 미주총련과 아주 그럴싸한 해병대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으며 등 굽은 전우들의 힘겨운 페레이드 소식은 노병들만의 보람으로 만족해야 했다.
노병들은 누구를 위하여 하루 종일 걸어야 했을가? 아마도 말은 없지만 순식간에 가버린 그 옛날의 젊음이 그리웠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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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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