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를 걷다 한 집 앞에 세워 둔 이삿짐 차를 보는 순간 몇 년 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던 날이 생각났다. 이사란 단어만으로도 힘들고 지친 나에게 기분 좋은 단어로 바뀌는 계기가 된 일이 있었다. 그 동안 살면서 십 년에 한 번씩 네 번의 이사 중 집을 팔고, 사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치워도 끝없이 나오는 집안의 물건을 정리하며 몸도 마음도 탈진 상태가 되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에 만족하기 위해 이사 때마다 살던 집 청소를 꼼꼼히 했지만, 막상 이사하면 전 주인이 구석구석 남겨놓은 쓰레기 치우느라 나도 모르게 투덜거리며 몸과 마음이 상했었다.
그런데 마지막 이사 때에는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 따뜻한 이사 날이 되었다. 매번 내가 살던 집에 새 주인이 왔을 때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도록 마지막 이사 때에도 먼지 하나 없이 청소하고 나오는 버릇 때문에 정성껏 마무리하고 또다시 이사 온 집 치울 생각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새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전 주인이 청소 도구를 들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류 일이 다 끝나고 집 열쇠까지 받은 상태에서 무슨 일인가 궁금해 물었더니 마무리 못한 곳이 한군데 있어서 마저 하려고 왔다 한다. 괜찮다고 하는데도 신경 쓰지 말라며 청소 도구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나 또한 이삿짐을 들여놓아야 했기에 집에 들어간 순간 아!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오픈 하우스 할 때보다 더 깨끗해진 집안 곳곳엔 전 주인이 정성스레 청소한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다. 부엌에 아끼던 와인 두 병과 함께 이 집에서 좋은 추억 많이 쌓기를 바란다는 메모가 있었다. 이번 이사 때도 별 기대 안 하고 왔는데 깨끗이 청소된 집을 보니 지친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전 주인은 이삿짐 나르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벽난로 속에 쌓인 재를 깔끔하게 치우고 환한 미소로 “이 집에 오신 것을 축하한다”라며 마지막 따뜻한 포옹을 하고 떠났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딸이 지나가며 ‘남에게 인정을 베풀면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라는 옛말처럼 “엄마도 돌려받나 봐” 한다. 처음으로 기분 좋은 이사 날에 자식이 알아주어 더 기운이 났다.
이사를 준비하고 있는 딸에게 “살던 집에서 쌓았던 좋은 추억은 잘 포장하고 안 좋은 추억은 청소할 때 깨끗이 치우라” 말하며 새 주인이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도록 마무리를 잘하라고 당부했다. 살아가며 직장 또는 교육 때문에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한두 번쯤은 정들었던 집을 떠나야 한다. 내가 살던 집에 다른 사람이 기분 좋게 들어올 수 있도록 조금씩 신경을 쓴다면 좀 더 나은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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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희 포토맥 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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