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문서를 보관하는 큰 서류함 안에 조그만 예쁜 상자가 있다. 그 상자는 원래 반지 상자였는데 지금은 반지 대신 나와 아이들의 젖니가 몇 개 담겨 있다. 아이들의 젖니는 그냥 지붕 위로 던져버리지 못해 간직하고 있고, 내 치아는 몇 년 전에 홍합을 먹다가 홍합껍데기를 잘못 씹어 결국은 임플란트를 하게 된 양쪽 송곳니다. 그 송곳니는 영구치가 아니라 60년을 나를 보살펴 준 유치인지라 특별히 애착이 가서 의사에게 부탁하여 받아 와 상자 안에 담아두고 있다. 그 상자에 며칠 전에 새로운 식구가 더해졌다.
부모님의 건강 중 여러 가지 병력을 물려받아 조심스레 다스리며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약한 치아이다. 나름대로 신경을 써 왔는데도 닭튀김을 먹다가 뼈를 씹어 어금니에 금이 가는 일이 생겼다. 점차 고통이 심해져 치과를 찾아야 했고 결국은 신경치료 후 크라운을 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직업상 가장 바쁜 시기에 치과를 여러 번 방문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는데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한 번의 방문으로 크라운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 말을 듣고 난 두 가지 사실에 무척 놀랐다.
첫째는 이제 모든 분야에서 과학의 혜택을 누리고 있음을 알지만 몸의 일부인 치아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컴퓨터의 지능을 빌린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우선 치아를 3-D 이미지로 스캔하여 크라운의 형태를 잡는다. 한 토막의 세라믹을 기계 안에 세워놓고 15여 분간을 컴퓨터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의해 정교한 다듬질을 하여 내 어금니에 맞는 크라운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다듬어진 치아를 도자기를 굽듯 20여 분간 오븐에 넣어 굽는다. 구워진 치아를 몇 분간 식히니 나의 어금니를 감싸 줄 오목한 모습의 크라운이 탄생하였다. 마치 갓 태어난 병아리를 본 듯 신비롭기만 했다.
둘째는 크라운을 만드는 과정에 호기심과 약간의 흥분을 느끼고 있는 내 모습에 나 자신이 놀랐다. 의사 선생님께 양해를 얻어서 내 크라운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눈여겨보겠다는 나의 관심이 새로왔다. 이런 면이 내게 있었나 싶으면서 한편으론 퍽이나 다행스럽다. 조금일지라도 아직은 남아있는 나의 사물에 대한 호기심을 확인한 즐거움이었다.
이렇듯 작은 일들이 가슴을 울렁이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지난 여름엔 산책 중에 개미들의 전쟁을 목격하게 되었다. 걷다 보니 보도의 절반 정도가 뭔가로 새까맣게 덮여있었다. 피해 가려다가 작은 움직임이 있어 자세히 내려다보니 그게 모두 개미였다. 수천 마리의 개미중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개미가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개미는 서로 이마를 맞대고 싸우는 중이었다. 누가 적인지를 어찌 알고, 도대체 무슨 일로 이리 목숨 걸고 전쟁을 하는 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10여 분을 보도에 주저앉아 구경(?)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궁금증은 나로 하여금 집에 돌아와 개미에 대한 연구 기사를 찾아 읽게 만들었고 개미들의 조직생활에 대해 놀랐던 적이 있다. 집 앞에 졸졸 흐르는 물줄기를 잎사귀로 막아 새들의 목욕탕을 만들어 놓고 새들이 깃털 털어가며 세수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대단하다. 또한, 온도 조절을 위해 수없이 나풀대는 꿀벌들의 날갯짓도 경이롭고 벌들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희열도 대단하다. 요즈음엔 자연의 작은 움직임에 아주 쉽게 깊은 감동을 한다.
어릴 땐 그저 지나치고 말 일이 지금은 새삼 가슴에 와 닿는 것은 한 곳만 주시하며 앞만 보던 시선을 이제 각도를 넓혀 바라보는 여유가 세월과 함께 온 것일까? 보다 큰것을 원하고 갈망하면서 살았고 작은 것엔 불만족과 무시로 지내 온 시간이 참 길었다. 이제부터라도 무표정과 무관심의 생활보다는 항상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작은 감탄 속에서 계속되는 나날이길 기대 하고 싶다. 나이 들어가며 이렇듯 섬세한 부분에 대해 마음을 집중하고 거기에서 얻는 작은 기쁨과 신세계를 만나는 듯한 행복을 느낄 땐 생활에 활기가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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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레지나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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