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커뮤니티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웨체스터에 대형 한국식품점이 생겨 좋아하던 시절도 지났는지, 언제부터인가 뉴저지 어느 한국 마트에 가면 가격도 싸고 여기에 없는 물건도 많다는 소리가 자주들렸다.
뉴저지에 갈 일이 생긴 김에 그 한국 식품점엘 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서울 어느 농장 직매장에 온 듯했다. 잘 정돈되고 조용한 여기 식품점과 달리 왁자지껄 한국말이 들리고 산더미같은 물건들의 어수선함에 정겨움이 느껴진다. ‘어디 관광온 것 같네.’ 기분마저 들떴다.
이 식품점에만 있다고 들은 황금 고구마가 보였다. 몇몇 사람이 큰 봉지에 고구마를 담고 또 담는다. 그 사이에 끼어들며 고구마가 다 없어질까봐 초조하기까지 했다. 그 옆에는 그야말로 밭에서 금방 뽑아온 듯한 무우청이 쌓여 있다. 커다란 묶음 한단에 1달러 99센트… 정말 싸다. 짙푸른 잎사귀만 봐도 영양분이 듬뿍할 것 같아, 견물생심, 한 단을 집어 들었다.
장터같은 매장을 둘러 보는데 비닐 봉지를 가져가지 말라면서 들키면 한 장당 얼마씩 받겠다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세상에! 아니 비닐봉지를 훔쳐가는 손님들이 얼마나 많으면 경고문까지 써 붙였을까. 가져가지 말라는 플라스틱 봉지를 보니 보통 것보다는 좀 두꺼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곳 손님들 수준이 이 정도란 말인가. 오래 전, 어느 사우나에 ‘수건을 가져가지 마세요.’란 한국어 사인을 보며 웃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적발하면 돈을 받겠다고 위협까지 하고 있다니…
어쨌거나, 어물전이나 즉석 반찬가게를 한 바퀴 돌고 나니 카트가 두둑해졌다. 집에 와서 우선 구글로 무우청 요리를 찾아보고 나서, 데치고 얼려 놓으려고 아름드리 무우청을 묶은 고무줄을 풀었다. 세상에~. 한꺼풀 속에는 누런 무우청이 뒤섞여 있었다. 한 두 잎사귀가 아니었다. 사람을 이렇게 속이나. 누런 잎을 골라내며 화가 났다.
보통 수퍼마켓의 물건들이 속에는 겉만 못한 것이 들어있기 마련. 차라리 그것을 정상으로 여기며 살아 왔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이 무우청을 묶은 사람은 일부러 먼저 노랗게 된 줄기를 놓고 그 위를 싱싱한 잎으로 가린 것이다.
얄팍한 상업 수단이기 보다는 ‘속임수’ 라는 생각이 든다. 짙은 초록잎을 보고 사 간 손님이 집에 와서 누렇게 마른 잎사귀를 보며 크게 실망할 걸 모른단 말인가. 버려야 할 무우청 몇 단을 속여 팔아먹은 것만으로 그저 좋아했을 것이다.
강 건너 멀지만 않았어도 이대로 들고 가서 매니저를 찾을 심정이었다. 그렇다. 뭘 얼마나 더 잘 먹겠다고 그 멀리로 식품을 사러 간단 말인가. 요리를 하다가 갑자기 필요한 것이 있어도 당장에 뛰어가 살 수 있고, 예전처럼 차 트렁크에 온갖 한국식품을 잔뜩 싣고 오지 않아도 되는 것만 해도 얼마나 좋은가. 로컬 상점을 애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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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려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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