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은 생산성 문제 직면한 일본, 기업문화 반성·청년 창업 활발
▶ 광주형 일자리와 제주 영리병원, 산업변화 맞춰 제대로 실현돼야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대학 교수·한국경제학회장
“노동력 부족이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지만 임금은 오르지 않습니다.”
얼마 전 한국에 잘 알려진 일본의 대학교수 한 분이 필자가 몸 담고 있는 대학의 세미나에서 한 말이다. 한국보다 고령화 단계가 앞선 일본은 베이비붐 세대(1947~1949년에 출생한 전후 세대)가 은퇴를 하면서 노동력 부족이 일어나고 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태어날 때부터 불황만을 보고 자라 극도로 소비를 절제하는 사토리(달관) 세대, 유토리(여유) 세대가 화제가 됐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우리 사회에서도 N 가지를 포기하는 N포세대가 조어됐다.
“노동력 부족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오르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낮은 생산성 때문입니다.”
이 교수는 말을 이어갔다. 낮은 생산성은 경제성장을 제약한다. 사실 낮은 생산성은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생산성이 크게 침체됐으나 침체된 생산성은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나라는 극단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공행진을 벌였던 생산성 증가율은 거의 자유낙하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와 같은 노동시장의 변화는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사회적 합의를 쉽게 이끌어낼 수 있게 됐습니다.”
일본은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빠지자 캐나다·호주·베트남 등 아시아·태평양 11개국이 참여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체결을 주도했다. 양자 간 무역협정과 달리 다자간 무역협정은 무역과 직간접적으로 관련한 경제적 규범의 범위가 매우 넓다.
따라서 그만큼 구성원 사이에 이해 상충의 소지가 많아 다자간 협정의 혜택이 훨씬 크지만 쉽게 참여하기는 어렵다. 세계 최대의 다자간 무역협정인 세계무역기구(WTO)협정이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는 이유다.
“일본과 달리 일자리가 모자라는 한국은 아마도 어떤 것도 하기 어려운 상황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가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관심 있는 기사를 스마트폰에 저장해뒀다가 가끔씩 유형별로 분류한지 꽤 됐다.
어릴 적 우표수집을 떠오르게 하는 이 작업은 초연결사회에서 일어나는 한국 사회의 변화하는 모습을 마치 실시간으로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지난 5년여 전부터 고용·젠더·복지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갈등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으며 경제적 문제는 이 갈등을 키우고 있다.
한국도 베이비붐 세대가 65세가 되기 시작하는 오는 2020년부터 일본처럼 일자리가 늘어나고 갈등도 그만큼 줄어들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세계 최대 자산국 일본처럼 대외 부(富)를 축적하지 못해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더욱이 취업자가 가장 많이 늘어나는 연령층이 65세 이상이라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 어렵게 한다. 복지 재원과 일자리를 두고 또 다른 세대 간 갈등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낮은 생산성이 일본이 처한 근본적인 문제라는 인식에서 유연성과 다양성이 현재 일본이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일본 교수가 세미나를 마치면서 한 말이다. 권위적인 기업 문화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으며 실제로 유능한 인재가 대기업으로 취업하는 대신 창업을 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일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작 유연성과 다양성이 필요한 곳은 한국이다. 수출생산기지로 번영을 누렸던 한국판 러스트벨트는 경직적인 경제구조가 얼마나 외부 충격에 취약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경쟁력을 잃어가는 산업과 그 산업에 매달린 고용, 그리고 그 고용에 의존한 지역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한때 남의 나라 일인 듯했다.
경제가 성숙하면 산업구조도 변화하기 마련이나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독일이 여전히 제조업 강국으로 남은 것은 끊임없이 효율성을 추구해 높은 생산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 주도로 추진한 광주형 일자리와 제주도 영리병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제대로 실현이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한국 사회도 다양성과 유연성을 수용할 수 있는지 분명 중요한 시험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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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성균관대 경제대학 교수·한국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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