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종 전 연합감리교회 목사
이 글은 퍽 ‘퍼서널한’ 한 글이다. 왜냐하면 알츠하이머(치매)에 걸린 아내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치매로 고통당하는 가족들이 많으나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병이란 누구의 죄로 인한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3년 전 아내는 갑자기 고열로 사흘 동안 코마 상태에서 생사를 헤매다가 나흘만에 깨어났으나, 먹지도 마시지도 일어나지도 못한 채 재활원에서 100일을 지내야했다. 나는 하루 종일 그 방에 앉아 간호사들이 돌보는 것을 감독하며 아내를 위로했다. 아내는 다행히 말은 잘했고 음식은 튜브로 공급하여 건강을 유지했다.
그렇게 100일이 지나니까 보험이 다 됐다고 집으로 가라고 해 나는 다섯명 간호사가 하던 일을 배워서 집에서 직접 돌봤다. 그 결과 한 달만에 밥도 먹고 일어나 종종 걸음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치매가 시작되었다. 기억력이 없어지고 가끔 환상을 보고 이상한 말을 하곤 했다. 그리고 엄마를 찾더니 이제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아빠, 아버지, 할아버지 등 여러 가지로 부르지만 나를 무엇보다 엄마로 의지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어린아이를 돌보듯 늘 함께 있어야 하는 나는 밖에 나갈 때는 휠체어에 태워서 데리고 다닌다. 사람들은 힘들겠다고 동정하지만 나는 55년 전에 약속한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사랑한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에 나가면 우리가 개척하고 12년이나 목회한 교회의 교인들은 교회의 ‘엄마’ 노릇을 하던 옛 사모를 껴안으며 안타까워한다.
벌써 현직에서 은퇴한지 14년 되었으니 집에서 글이나 쓰고 가끔 목사님들이 초대하면 설교나 축도를 하는 정도의 일 밖엔 없다. 그래서 집에서 아내 돌보는 일이 나의 ‘풀타임 잡’이다.
얼마 전 아내는 한밤중에 일어나 느닷없이 “김해종이 어디 갔어?”라고 물었다. 자다 말고 일어나 결혼사진부터 가족사진까지 보여주고, 옛날이야기부터 현재까지 한참 이야기해주고 잠을 재운일이 있다. 오늘 새벽에도 세시에 깨서 “엄마, 나 배고파” 해서 군고구마와 바나나를 먹여서 재워놓고 이 글을 쓴다.
성탄은 엄마의 이야기다. 아들을 낳아 말구유에 누인 엄마, 그림자 같이 아들 예수를 따라 다니던 엄마, 그리고 십자가 밑에서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던 엄마! 미켈란젤로는 그 엄마 마리아의 모습을 ‘피에타’ 라는 대리석 조각 속에 담아 영원한 엄마의 모습으로 남겨주었다. 성탄, 예수의 탄생은 엄마로 시작하여 엄마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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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종 전 연합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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