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새벽 한국에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작고하신 황병기 선생님의 사모님인 소설가 한말숙 선생님께서 황병기 선생님에 대한 글과 함께 선생님과 사모님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자는 내용이었다. 메시지와 함께 도착한 글은 황병기 선생님의 음악과 인생에 대한 것이었는데 선생님의 음악과 더불어 자란 나에게는 그 길지 않은 글이 갑자기 목이 멜 듯한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 글은 한동안 마음속에 박혀 있다가 2018년 마지막 연주회가 끝난 시점부터 황병기 선생님의 곡을 다시 꺼내 매일 밤 되새기며 연습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지난해 1월 작고하신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님은 한국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선생님의 이름 석자와 작품에 대해서는 한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국악의 지평을 넓힌 분인데 명인이라는 단어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분이다.황병기 선생님의 작품은 형식에 의존하지 않고 영감에 의존하여 표현하려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특징이다.
전통의 형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선생님의 현대곡들은 한마디로 형식과 틀의 파괴라고 할 수 있다. 6~70년대에 음계를 달리하여 작곡된 곡들은 당시로서는 파격 그 자체였는데 요즘에도 시대에 뒤떨어진다거나 촌스럽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알면 알수록 경이로운 느낌만 들 뿐이다.
어느 한 곡을 꼽기도 힘이 들지만 가장 대표적인 곡으로 신라인의 춤추는 모습을 연상하여 그 시절 음악을 재현하려 노력한 ‘침향을 피우고 그 향기 속에서 추는 무용’이라는 뜻의 ‘침향무’라는 곡이 있다.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유치원생부터 평생을 가야금에 바친 명인까지 두루 연주할 수 있는 곡이다.
쉽게 연주할 수 있다고 해서 절대 쉬운 곡이 아닌 미지의 세계와 무아지경까지도 느낄 수 있는 비범한 곡이다.전통을 중시하되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세간의 평과 한국 음악가로서 고뇌를 초탈하여 마치 선인의 경지에 도달한 듯한 천재음악가, 황병기 선생님의 생각과 인생이 그분의 음악을 통하여 한 폭의 슬프고도 무척 아름다운 그림처럼 오늘도 내 삶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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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화영 / 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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