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은 겨울 왕국이다. 얼음 빌딩들이 하늘을 향해 키재기를 하고 있다. 그늘을 잃은 빙판에는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세 명의 한국인이 북극 마라톤에 합류했다. 출발신호가 울리자 러너들이 얼음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젠이 얼음에 닿을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5,6명의 선두주자들이 앞 쪽에서 뛰어 가고 있다. 얼어버린 빙판의 곳곳에 서 있는 깃발만이 러너의 목표다. 얼음이 녹아 빙수처럼 서걱대는 곳에서 신발이 젖어 발이 시려온다. 달리는 동안 숨이 얼고 발바닥의 감각이 사라졌다. 극한 지형의 꽝꽝 얼어있는 빙판 위를 러너들이 뛰고 있다. 얼음 언덕을 로프에 의지하여 올랐다가 내리막으로 미끄러진다. 빙판을 지나 검은 돌산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아이젠을 벗었다.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발 아픔도 잠시 잊어버린다. 어떤 이는 북극의 얼음을 잘라 먹으며 환히 웃었다. 얼굴에 문지르기도 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39세의 권하운은 달리기를 사랑한다. 한 해 동안 여러 마라톤에서 1등을 휩쓸었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북극의 상황은 많이 달랐다. 처음 17km 지점에서 앞서가던 선두를 뒤로 하고, 19km 지점에서 마침내 1위가 되었다. 앞으로 23Km를 버텨야 한다. ‘통곡의 언덕’의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었다. 권하운이 잠시 물을 마시는 동안 다시 선두를 내주었다. 1등 러너는 그린란드 사람으로 그의 허벅지는 얼음에 단련되어 있었다. 그 때부터 격차가 벌어졌고, 반복되는 오르막이 체력을 긁어냈다. 종아리에 쥐가 났다. 멈추어 주저 앉아서 신발 끈을 다시 묶었다. 39Km지점에서 4명이 그를 지나쳤다. “포기하면 안돼” 몸이 속삭였다. 멀리 고지가 보였다. 고통의 신음에도 다리는 쉬지않고 앞으로 간다.
400m를 남긴 지점에서 태극기를 건네 받았다. 근육이 고통으로 경련을 일으키며 부들부들 떨렸다. 허벅지가 터지는 것 같았다. 걷는 것조차 어려워 주저앉았으나 통증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마음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완주만 하자. 저 선까지만” 불과 몇 미터 앞에 결승선이 보였다. 그는 네 발로 기어갔다. “조금만” “조금만” 응원하는 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몸은 이미 자기의 것이 아니었고 종아리는 돌처럼 굳어 있었다. 그는 몸을 끌어 결승선의 남은 거리를 채워갔다.
마침내 결승선을 넘는 순간, 그대로 엎드러졌다. 눈물이 쏟아졌다. 누운 채 손에 쥔 태극기를 힘겹게 들어 올렸다. 북극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태극기가 뜨겁게 펄럭였다. 환호하는 박수소리는 눈송이처럼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완주메달도 가슴에서 함께 울었다. 그는 해냈다. 가장 아름다운 마무리로 한국을 빛냈다. 신체의 한계를 넘어선 끈기로, 끝까지 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빛났다.
아름다운 마무리란 원하는 자리에 빨리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중간에 주저앉지 않는 것, 끝을 향해 자기 몫의 걸음을 다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마지막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설 수 없고, 똑바로 걷지 못하고, 말조차 흐려지는 순간에도 각자의 방식으로 결승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란 우아하게 서서 박수를 받는 일이 아니라 끝을 향해 나가는 일, 기어가듯 도착하더라도 자기 삶의 결승선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삶은 자기의 마지막 빛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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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숙 시인·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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