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중 수필가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섬 도시가 제주다. 그곳에 있는 딸네 집에서 두 달을 넘게 지내다, 머물고 간 바람처럼 연말에 나는 딸 곁을 떠나 내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을 떠나올 때 까지 멀쩡하던 몸이 막상 집에 돌아오니 설사, 감기 몸살로 탈이나 병원출입을 하면서 새해를 맞았다. 새해라고는 하나 내게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이었고 똑같은 일상은 변함없이 내 곁에서 반복되고 있다.
새해가 시작 되었다는 것은 아무도 걷지 않은 새 길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사람들은 새것을 만나면 새로운 감정이 생기는 즐거움이 있어 소망의 은빛 날개를 펼친다.
소망, 그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가장 찬연한 삶의 빛깔이다. 비워둔 가슴에 충만한 은총이 넘치도록 채워질 것을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소망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보다 잘 살려는 의욕의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표상이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 나는 새해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이 고민이 된다. 무엇을 새롭게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노년에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해도 문화권이 다르면 사고나 대화에 차이가 있다. 한국과 문화권이 다른 미국에서 반평생을 넘게 살다보니 나를 부르는 다양한 호칭에 익숙하다. 어떤 이는 미세스 김, 어떤 이는 영 김, 그리고 선생님, 권사님, 할머니 등으로 부른다.
이런 호칭이 편하게 느껴져 내 나이를 별로 의식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으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지인들이나 주변 이웃사람들은 나를 “어르신“이라고 부르며 융숭한 대접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어르신이라는 뜻밖에 호칭이 생소하고 거북했다.
어르신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나이 많은 사람을 높이어 일컫는 말이라고 적혀 있었다. 동방예의지국이 만들어 낸 호칭이다.
나이는 들었으나 어른스러움보다 아이스러움이 더 많은 내가 아닌가, 나는 나이에 걸맞은 사람이 아니다. 나이에는 나잇값에 해당하는 세월의 철학이 담겨져 있어야 하는데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고 싶은 노경에 이른 것이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고 나의 존재 이유를 일깨우며 변화를 꿈꾸는 시간이 되었다.
나잇값을 하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겠으나 내면의 성숙함이 없으면 꼴불견이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벼가 익으면 이삭의 무게에 의해 고개가 숙여지는 것처럼 사람도 나이가 들면 나 중심의 자아를 내려놓고 겸손과 지혜로움이 배어있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삶을 관조하는 나이에 있다. 노년에 임하는 겸손과 사랑으로 행복을 주는 지혜로운 모습으로 서야 한다. 올 한해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건강도 돌보며 내면의 성숙을 위해 기도하리라 다짐한다. 내가 소망하는 것은 젊음이 아니라 존경받기에 충분한 나잇값을 하는 품위 있는 ‘어르신’이 되는 것이다. 그런 소망을 품고 또 다시 떠오른 태양을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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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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