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 크을스마스라꼬 동네가 삐까뻔쩍하더마…” “그기 머인데?” “국민학교 나왔다카더만 그런 거도 모리나? 예수 생일 아이가?” (중략)“학생들은 낼 안 나오겄네? 젊은 아들은 다 챙기더만.” “아니 뭐…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니고… 우리도 잘 안 챙겨요.” 주인 없는 잔치에 휘황하게 불만 밝힌 곳이나 웃음이 쌓이다 미움으로 뒤집어진 곳에도 당신의 근심과 사랑이 함께하소서. Happy Birthday to you.’
<최규석,‘습지생태보고서’, 2012년 거북이북스 펴냄>
‘100℃’ ‘송곳’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만화가 최규석 작가는 궁핍했지만 하고 싶은 일도 많았던 자신의 대학 시절을 책으로 남겼다.
책 제목은 ‘습지생태보고서’. 습지란, 여러 친구들이 월세를 아끼기 위해 모여 살았던 대학가 반지하 방을 빗댄 것이다.
습지 친구들에게 도시의 크리스마스는 쓸쓸한 날이다. 그날은 예수의 생일이자 모두의 잔칫날이다.
모두가 ‘삐까뻔쩍’하게 기분을 내보는 날. 누구나 한 해를 잘 살아냈음을 축하하고 새해의 새 삶을 기약하는 날.
그러나 이 잔칫날에도 공사하고 요리하고 서빙하고 청소하고 카운터를 볼 사람은 필요해, 어떤 이들은 크리스마스에도 담담하게, 엄살 부리지 않고 일을 나간다.
위의 대화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건설현장 노동자들과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나선 습지 친구들이 나눈 대화다.
취업난은 여전하고 앞길은 막막하며 하루의 일당은 간절해, 올해도 예수의 생일은커녕 자기 생일도 챙길 수 없는 젊은이들은 크리스마스에도 나와 일할 것이다.
그리고 올 크리스마스에도 우리는 이 도시의 곳곳에서 땀에 젖은 그들을 마주할 것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일수록 물가도 올라가는 크리스마스의 마법 속에서, 그들에게 주어지는 일당 역시 합당하게 올라가기를.
그리고 취업을 기다리는 습지 청년들은 새해 자신의 일터에서 땀 흘려 일하고 이날만은 맘 편히 쉴 수 있기를.
<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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