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열 사람이 모여 공동체를 구성했다. 열 명은 함께 일하고 공동생산한 것을 공평하게 나누고, 분쟁이 생기면 마을회의에서 다수결로 정하기로 했다. 열 명은 함께 열심히 일했고 가을이 되자 열 섬의 쌀을 수확했다. 각자 혼자서 일하는 것보다 두 배나 많은 수확이었다. 그들은 당초 약속대로 각자 한 섬씩 나눠 가졌다. 아홉 명은 노동의 결실에 흐뭇해하면서 나눠 가진 쌀로 밥을 지어 배불리 먹었지만 길동이는 더 어려울 때를 위해 쌀을 아껴두었다. 춘궁기가 돌아왔다. 아홉 명은 쌀이 모두 떨어졌지만 길동이는 한 섬의 쌀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아홉 명 중 한 명이 발의했다. “이러다가 우리 모두 굶어 죽겠습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쌀을 모두 수거해 공평하게 나눠 가집시다.” 길동이는 반대했지만 그 의안은 마을회의에서 9대1이라는 압도적 다수결로 가결됐다. 한 명은 불행했지만 아홉 명은 행복했다.
다음 해에도 열 명은 열심히 일해서 열 섬의 쌀을 생산했고 각자 쌀 한 섬씩을 나눠 가졌다. 아홉 명은 배고팠던 지난봄을 생각해 쌀을 아껴뒀지만 길동이는 어려울 때 다른 사람들이 도와줄 것을 믿고 배불리 밥을 먹었다. 다시 봄이 됐다. 쌀이 떨어진 길동이는 마을사람들에게 쌀을 나눠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아홉 명 중 한 명이 말했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더니 지난번 결정은 잘못된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길동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의견은 마을회의에서 9대1이라는 압도적 다수결로 가결됐다. 그 해에도 역시 한 명만 불행했을 뿐 나머지 아홉 명은 행복했다.
이 이야기는 내가 학생들에게 형식적 법치주의와 실질적 법치주의를 설명할 때 사유와 논의의 실마리로 던지곤 하는 사안이다. 법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가끔 논의의 실마리로 ‘법의 목적은 지상낙원의 건설이다’라는 명제로부터 시작해보자고 말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착한 일을 많이 하면 갈 수 있는 하늘나라 중 ‘타화자재천’이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힘들여 일할 필요도 없이 원하는 모든 것이 거저 주어지는 곳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 하늘나라에서 사는 것이 참된 행복이 아니라고 했다. 도연명의 무릉도원이나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일하지 않고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일한 만큼 수확하고, 그 수확을 잃을 두려움이 없고, 모든 사람이 서로 존중하고 다투지 않는 세상, 불의와 폭력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한다.
악법은 법이 아니라고 말할 때 앞의 법과 뒤의 법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조변석개하는 법은 법이 아니라고 말할 때도 앞의 법과 뒤의 법은 같은 법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지상낙원을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법의 목적이 정의라고 말할 때 우리는 과연 그 법이 어떤 의미의 법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법의 목적은 길동이를 더는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다.
<박철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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