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일이 너무 바빠서 자주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친구와 간만에 긴 통화를 했다. 글로벌 기업의 유럽 본부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는, 회사 생활이 한층 더 지겨워지는 중이라고 했다. 인종차별 반대 시위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처음엔 CEO였어. 본인은 비록 백인이지만,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은 역겨운 일이고 우리 회사는 절대 그런 차별을 용납하지 않을 거라며 언론에 입장문을 발표하고, 전 직원에게 일장 연설을 했지. 그 다음엔 우리 사업부 총괄 임원이었어. 그도 역시, 비록 자신은 백인이지만, 인종차별은 나쁘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흑인 친구를 한 명 데려와서 차별 경험담을 털어놓게 만들더라? 그 다음날은 우리 유럽 본부의 사장이었어. 역시 중년의 백인 남자인데, 자기가 겪어본 적은 없지만 이해한대.
그러면서 무슬림 여성을 데려와서 슬픈 경험담을 나누게 만들더라고. 어제는 우리 팀장이야. 자기는 백인이지만, 정말 인종차별은 나쁜 일이고, 우리 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시하겠대. 그런데 왜지? 하나도 와닿지가 않아. 백인이라서 모르고, 백인이라서 이해도 못 하는데, 어째서 본인들이 평등의 수호자가 된 것처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거야? 누가 그런 권리를 줬지? 나는 동양인이 없는 중서부 시골의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한국계야. 돈 많고 힘 있는 백인 남성들이 우릴 절대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고. 매일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지긋지긋해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내가 꼬였다고 생각해? 어째서 난 하나도 진심같이 느껴지지가 않을까?”
1976년, 작가 조세희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이렇게 썼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적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진심이 아닌 게 당연하다. 그들은 지옥이 어떤 지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진정성이 없는 게 당연하다. 그들은 져본 적이 없으니까. 그들이 룰을 만들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룰을 만들고, 남들이 지키게 하니까 절대 지지 않는다. 불평등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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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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