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한 분이 초록 애호박 대여섯 개를 모아놓고 앉아 있다.
삶이 이제 겨우 요것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최소한 작게, 꼬깃꼬깃 웅크리고 앉아 있다.
귀를 훨씬 지나 삐죽 올라온 지게 같은 두 무릎, 그 슬하에
동글동글 이쁜 것들, 이쁜 것들,
그렇게 쓰다듬어보는 일 말고는 숨쉬는 것조차 짐 아닐까 싶은데
노구를 떠난 거동일랑 전부
잇몸으로 우물거려 대강 삼키는 것 같다.
지나가는 아낙들을 부르는 손짓,
저 허공의 반경 내엔 그러니까 아직도
상처와 기억들이 잘 썩어 기름진 가임의 구덩이가 숨어 있는지
할머니, 손수 가꿨다며 호박잎 묶음도 너풀너풀 흔들어 보인다.
문인수 ‘저 할머니의 슬하’
호박순 같은 여린 시절 있었지. 떡잎처럼 도톰한 발바닥으로 흙길을 달려갔지. 빛나는 살갗은 애호박처럼 탱탱했지. 덩굴손 뻗어 높은 울타리도 훌쩍 넘었지. 호박꽃 귓전에 어지간히 지분거리던 수벌들도 있었지. 이제 나는 머리에 달래 바구니 가득 이고, 이마에 밭두렁 논두렁 새겨 넣었지. 세상 물고 뜯던 이빨, 호박씨처럼 흩어진 입속은 블랙홀같이 신비롭지. 마침내 나는 완성되었지. 무릎이 귀를 넘도록 낮아지자 한없이 새롭고 미쁜 세상을 만났지. 철부지 애호박들이 닿을 수 없는 웅숭깊은 열매가 되었지. 반칠환 [시인]
<문인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