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워싱턴에 오기 전, 나는 서울, 남산에 소재한 햐얏트 호텔에 근무하면서 ‘신데렐라,’ ‘앰배서더 서’라는 별명을 갖고 많은 사람들의 인기와 선망을 누리며 그것이 내 나머지 삶에도 계속될 필연적 운명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운명의 터닝 포인트에 부딪치며 예기치도 않았던 미국, 워싱턴에서 새로운 삶을 내딛게 됐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주위 사람들은 내게 로비스트를 하면 최고로 잘 할 거라고 하지만 그러한 유혹을 뿌리치고 내 이민자의 삶은 메릴랜드에 있는 워싱턴 바이블 칼리지에서 뒤늦은 신학 공부로 뿌리를 내렸다.
워낙 영어권 생활에 익숙했던 나였지만 신학 용어 등은 노력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예배 시간에 영어 성경 구절을 빨리 찾지 못해 늘 미국 학생 곁에 앉아 눈 너머로 넌지시 배워야 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컴퓨터 시대가 아니라 교수들의 강의를 듣고 노트해야만 했다.
수업이 끝나면 미국 학생들한테 강의 노트를 빌려 도서실에 앉아 마무리 정리를 했다. 미국 학생들이 1-2시간 공부하면 나는 6-8시간을 공부했다. 밥 먹고 설거지 하는 시간도 아까워 부엌 싱크대 위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영어로 쓴 종이를 붙여놓고 외웠다. 심는 대로 거두는지 내 학교 성적은 늘 올 A였다.
학교 캠퍼스에 있는 자그마한 스튜디오 아파트에서 나는 매일 작아지고 낮아지는 연습을 했다. 서울 한강이 내려다보이던 나의 화려한 아파트, 매일 뛰어다니던 국제 행사, 대사관 파티, 전화 한 통이면 모든 일이 해결되던, 스타로서의 생활은 아련하게 구름처럼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여름 방학 때 서울을 방문해 하얏트 호텔에 들르면 지인들과 내 팬들이 아직도 찾고 기다렸다.
이렇게 나의 이민 초기 생활은 조그마한 학교 아파트에서 공부하며 낮아지는 인생의 연단이었다. 누구나 꿈꾸던 ‘아메리칸 드림’은 어디에 갔는지, 철저히 외롭고 철저히 모든 것을 떠나 보내야하는 나와의 투쟁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모교 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며 사회 심리학 박사학위를 마칠 때 쯤, 지금은 고인이 된 레인 에번스 의원을 만나게 됐다. 그와 연방의사당을 함께 다니며 미국 대통령들과도 친분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 에번스 의원이 내게 물었다 “정말로 미국에 온지 12년이나 된 거 맞아요? 그동안 학교와 교회만 다녔구만. 이제 나와 함께 미국을 공부해 봅시다. 그리고 약한 자의 소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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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옥자 /로럴,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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