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누군가 우리 부부에게 언제 기쁘고, 행복을 느끼냐고 물어왔다. 나는 대답이 잘 떠오르지 않아 생각에 잠겨 있는데, 남편은 오랫동안 생각해왔다는 듯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의 대답은 ‘성장’을 경험하거나 지켜볼 때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대답이었고, 통상 듣던 행복의 조건이나 이유와도 다소 다른 신선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며 잘 배우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그리고 내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고 행복임이 확실하다. 기어다니던 아이가 어느 날 두 발로 서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만 하던 아이가 ‘엄마’ ‘아빠’ 처음 말을 시작할 때의 행복. 그 환희의 순간들을 놓칠새라 부모들은 연신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다. 그런데 문득 ‘나는 성장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겼다.
엄마로, 아내로, 자녀로, 크리스천으로, 선생으로 그리고 동료이자 친구로 나는 과연 지금 성장을 하고 있는가? 이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나는, 내게 주어진 역할로 인해 최근 성장 혹은 성숙의 기쁨을 느낀 적이 있는가? 어린아이들의 신체적, 인지적 성장은 꽤 뚜렷한 마일스톤(milestone)이 있는데, 막상 나의 성장과 성숙에 대한 척도를 생각하려니 쉽지가 않다. 부모로서 성장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된 자녀로서의 성숙은 어떤 걸까? 에베소서 4장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고 말씀하셨는데, 신앙인으로 이 성장을 이루어가는 것은 어떤 실천적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장을 이루어가는 삶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혹은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겠다는 삶의 방향성은 과연 옳은 것일까?
이런 삶의 질문들을 놓고 생각하다 보니, 언제나 달려가 나에게 당면한 많은 질문과 고민들을 시원하게 터놓고, 조언을 구할 인생의 멘토들이 가까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학생 때는 질문이 생기면 쪼르르 달려가 물어보고 조언을 구할 좋은 스승들이 계셨는데, 그때는 그런 분들의 존재를 너무 당연히 여기고 그 소중함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연말을 맞아 나의 성장을 도와주셨던 은사들에게 감사와 안부의 인사를 전해야겠다.
<송현아 (산호세주립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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