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아무리 가고 싶어도 지금은 아니다. 얼마전 유튜브를 통해서 창덕궁 돈화문 앞에서 원남동으로 연결되는 길이 없어진 것을 처음 알고는 내 고향의 향수 깊은 곳이 또 하나 사라진 서운함을 다시 느꼈다.
서울 중고 다니면서 수없이 걸어 다닌 창경원과 종묘의 돌담이 양쪽에 펼쳐진 조용하고 깨끗했던 언덕길, 덕수궁 옆 돌담길과 함께 풍치 있는 서울의 궁궐 돌담길이었다. 일제가 저지른 훼손을 복원한다는 명분은 당연하지만 나에게는 좀 다른 이야기가 된다.
같은 맥락에서 내 기억에서 지금도 훤한 창경원의 모습이 대거 사라지고 원래의 창경궁이 복원된 장면을 보고도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 집서 걸어서 5분이면 들어가던 내 동네 공원 같은 곳, 어릴 때 심심하면 근처에 산보 가듯이 수없이 갔던 곳, 일제 때는 동물원이 주 목적으로 무슨 동물이 어디 있는지 훤히 알았고, 봄철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환히 조명된 벗꽃 판에서 몽상하듯 밀려다니던 꿈같은 기억, 해방 후엔 겨울마다 스케이트 타러 수없이 갔고 가끔 입장료가 없으면 집 근처에서 돌담을 넘어 들어가다가 경비원에 들켜 도망치던 기억들….
유리 온실 근처에 임시 권투 링 만들어놓고 프로 권투시합이 열리면 빠지지 않고 보면서 정복성 송방현 같은 선수의 팬이 되고 가끔 GI 흑인선수들도 나오던 기억, 그 근처의 한 문을 지나 들어가면 비원인데 1948년 우리의 서울중학교 입학을 축하한다고 전교가 비원 안 팔각정과 연못이 있는 장소에 모두 모였을 때 내가 어쩌다 하모니카 연주를 했는데 그 다음 김원규교장이 환영사를 하면서 학생들 오는 모습이 바지 호주머니에 두 손 처넣고 슬렁슬렁 게으르게 걸어오는 꼴 못 보겠으니 내일부터 바지호주머니 모두 꿰매고 등교하라고 명령해 그 후부터 호주머니 없는 바지 입고 다니게 된 서울중학교의 괴벽한 한 역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문인 피천득씨가 한 수필에서 말하기를 80을 넘어 살아도 기억하고 다시 회상할 것이 없는 사람은 단명이고, 추억이 많은 사람은 장수한 사람이라는 말로 보면 나는 무척 장수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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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제 안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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