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아이를 출산한 것으로 알려진 스베틀라나 크리보노기크가 역외 회사를 통해 모나코 해안가의 고급 아파트를 비밀리에 사들였다고 한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4일 공개한 ‘판도라 페이퍼스’에 소개된 내용이다. 크리보노기크가 2003년 푸틴의 딸을 낳은 직후 모나코 아파트의 소유자가 됐다는 내용은 전 세계 언론을 통해 즉각 알려졌지만 일부 러시아 국영 언론은 ‘푸틴’의 이름을 쏙 빼고 보도했다.
지난 25년 동안의 기록이 담긴 이 보고서에는 압둘레 2세 요르단 국왕,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등 전현직 국가수반 35명과 터키 건설업계의 거물 에르만 일리카크, 팝스타 샤키라 등이 포함됐다. 이들이 역외 계좌, 비밀 재단, 페이퍼컴퍼니 등을 통해 재산을 은닉하고 세금을 포탈한 행적은 기상천외하다.
판도라 페이퍼스는 117개국 159개 미디어의 언론인 600여 명이 참여한 탐사보도 프로젝트로 입수한 문건들이다. 전 세계 38개 관할 지역에서 사업하는 14개 서비스 제공업자로부터 유출된 자료를 기반으로 한 이번 보고서는 75만 장의 스마트폰 사진과 맞먹는 3테라바이트 분량에 달한다. 2016년 ICIJ가 발표한 ‘파나마 페이퍼스’에서 2.6테라바이트에 해당하는 문건들이 유출된 데 비해 한층 방대해졌다. 2017년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의 유출 자료는 1,340만 건에 1.4테라바이트 분량이었다.
판도라 페이퍼스에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충격적인 내용이 가득 들어있다. 입만 열면 반부패를 강조했던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은 가족 6명과 함께 13개의 역외 회사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개혁의 기수를 자임했던 블레어 전 총리는 880만 달러짜리 빅토리아 시대의 건축물을 보유한 버진 아일랜드 업체를 사들이면서 40만 달러 이상의 세금을 절감했다. 언론의 끈질긴 탐사보도가 위선적인 정치인들의 가면을 벗겨내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대장동 게이트’로 떠들썩한 한국에서도 키맨의 구속으로 판도라 상자가 들썩이고 있다. 우리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참담하게 떨어뜨린 주범은 기어이 드러날 것이다.
<문성진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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