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7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 이승만 전 대통령은 미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한국인은 밴플리트 장군을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부른다”며 각별한 경의를 표했다. 1892년 뉴저지 주에서 태어나고 플로리다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제임스 올워드 밴플리트는 군인의 꿈을 품고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15년 육사 졸업 후 미 육군 소위로 임관한 밴플리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제4보병 사단장으로 노르망디상륙작전에서 공을 세웠다. 이어 1951~1953년 미 8군 사령관으로서 6·25 전쟁에 참전했다. 전쟁 초기에 중공군의 파상 공세로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갔는데도 일본으로 철수하자는 참모들의 주장을 물리치고 수도권 최전방 사수를 밀어붙였다.
강한 군사력이 중요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그는 한국 육군사단을 두 배로 늘리는 한편 군 간부들을 미국으로 보내 선진 군사교육을 받도록 했다. 미국 웨스트포인트 학제를 본뜬 한국 육군사관학교 창설도 그의 건의에서 나온 작품이다.
그는 전역한 뒤에도 ‘한국은 또 다른 조국’이라며 전후 복구와 경제 발전을 위해 힘썼다. 그의 제안으로 1957년 설립된 코리아소사이어티는 한미 양국 간 정책·경제·예술 등 폭넓은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하며 친선 도모를 위한 각종 행사를 열어왔다. 특히 그가 숨진 직후인 1992년 제정된 ‘밴플리트 상’은 한미 관계에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정치인뿐 아니라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등도 이 상을 받았다.
구광모 LG 회장과 메리 배라 GM 회장이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이번에 ‘밴플리트상’을 공동 수상했다는 소식이다. 양 사는 2019년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를 설립해 전기차 배터리 대량 생산과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이 격화하면서 한미 동맹이 단순한 안보를 넘어 경제 안보 차원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이 전쟁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한미 동맹의 과거와 미래를 짚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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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정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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