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한 남성이 평창 동계 올림픽 성화를 봉송하면서 “나는 중국의 안타에서 왔다”고 외쳐 이목을 끌었다. 중국의 1위 스포츠 브랜드 안타(ANTA)스포츠의 딩스중 회장이었다. 딩 회장은 1970년 중국 푸젠성의 어촌 진장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신발을 만들어 해외에 납품하는 작은 공장을 운영했다. 어릴 적부터 부친의 일을 도왔던 딩스중은 “우리가 만드는 신발 가격은 고작 몇십 위안인데 왜 브랜드 신발은 몇백 위안에 팔릴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1986년 당시 16세였던 딩스중은 아버지가 지원해준 1만 위안과 신발 600켤레를 갖고 베이징으로 떠났다. 그는 타고난 사업 수완으로 베이징 번화가 주요 상점에 판매대를 마련해 신발을 팔았다. 4년 만에 20만 위안을 벌었지만 브랜드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절감했다.
고유 브랜드를 만들어 창업하기로 결심한 딩스중은 1994년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 딩쓰런과 함께 창업했다. 부친이 지어준 브랜드 ‘안타(安踏)’는 ‘안전하고 견실하게 발걸음을 내딛다’는 뜻을 담았다. 그는 1999년에 승부수를 던졌다. 80만 위안을 들여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인 쿵링후이를 모델로 쓴 것이다. 회사 연간매출이 100만 위안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업계에서는 딩스중이 미쳤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의 판단은 옳았다. 중국 운동화 시장의 점유율이 13%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7월 말 안타는 나이키와 아디다스를 제치고 중국 스포츠 브랜드 매출 선두에 올라섰다. 중국 업체가 스포츠 브랜드 매출액 1위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다. 안타의 약진은 신장 위구르 소수민족의 강제노동 의혹을 부각시킨 서구 브랜드에 대한 중국의 불매운동 덕이 크다. 중국에서 자국 브랜드 중심의 애국주의 소비 경향이 확산되면서 안타가 대표적인 수혜주로 떠오르고 있다. 갈수록 기업하기 힘든 환경이 조성되면서 많은 외국계 기업들이 중국을 떠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리스크를 피하려면 중국에 대한 투자·교역 의존도를 대폭 줄여가야 한다. 대신에 압도적인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시장 다변화에 나서야 활로를 찾을 수 있다.
<정민정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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