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회 하계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2008년 8월8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곧이어 깜짝 놀라는 부시 대통령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전 세계에 전송됐다. 푸틴 총리가 건넨 말은 러시아가 조지아에 대한 군사행동을 개시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조지아는 자국 영토인 남오세티야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고 러시아는 남오세티야에 있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대치해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적어도 올림픽 기간에는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캅카스산맥에는 옛날부터 오세티야인들이 살았다. 러시아제국에 병합돼있던 오세티야는 러시아혁명 이후 남북으로 갈라져 북오세티야는 소비에트연방에, 남오세티야는 조지아에 각각 편입됐다. 1990년 소련이 해체되자 조지아는 독립을 선언했고 조지아의 자치주로 있던 남오세티야도 덩달아 조지아로부터의 독립을 추진해 내전이 벌어졌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기간 중 일어난 남오세티야 전쟁은 4일 만에 러시아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남오세티야는 전쟁 이후 지금까지 독립국임을 자처하지만 유엔과 대다수 국가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조지아는 남오세티야를 여전히 ‘피점령 지역’으로 분류한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2008년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독립을 인정하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고 말했다고 스푸트니크통신이 전했다. 당시 러시아 대통령으로서 남오세티야 등에 군사 공격을 감행한 것을 정당화하며 우크라이나 사태가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임을 시사한 발언이다. 푸틴 대통령이 최근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두 공화국 독립을 승인하고 ‘평화 유지’를 명분으로 내세워 군대 진입을 명령한 것을 보면 2008년의 데자뷔같다.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는 뚜렷한 동맹도 없고 국방력도 변변하지 못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조지아가 남오세티야를 빼앗긴 것처럼 우크라이나도 크림반도에 이어 돈바스 지역마저 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처절한 약육강식의 ‘글로벌 정글’ 시대를 살아가려면 스스로 힘을 기르는 방법밖에 없다.
<한기석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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