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이탈리아 패션 업체 로로피아나가 페루 정부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안데스 산맥에 서식하는 낙타과의 동물 비쿠냐를 죽이지 않고 털을 깎아 제공하는 원주민에게만 원사를 구매하는 프로젝트였다. 비쿠냐 털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가볍고 따뜻한 천연섬유다. 하지만 비쿠냐는 성격이 예민해 사냥하지 않고는 털을 얻기 어렵다. 비쿠냐가 멸종 위기에 처한 이유다. 1960년대에는 5,000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페루와 로로피아나의 프로젝트를 통해 비쿠냐 개체 수는 늘어났고 로로피아나는 비쿠냐 섬유의 독점 판매권을 확보해 브랜드의 명성을 높였다.
로로피아나는 루이비통 산하의 명품 패션 브랜드다. 1812년 이탈리아 사업가 집안인 로로피아나 가문이 설립한 모직물 회사가 모태다. 로로피아나는 1924년 가문 이름을 딴 브랜드를 런칭하고 사명도 바꾸며 성장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2013년에 지분 80%를 인수한 프랑스 루이비통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로로피아나는 세계 최고의 품질을 지향하면서 그에 걸맞은 소재를 구한다. 비쿠냐 섬유, 베이비 캐시미어가 그 결과물이다. 몽골 고원에서 자라는 어린 염소의 털을 가공한 베이비 캐시미어는 감촉·보온성이 일반 캐시미어보다 뛰어나 ‘꿈의 섬유’로 불린다. 로로피아나 제품들은 최고급 소재로 만드는 만큼 가격도 비싸다. 남성 겨울 코트는 1,000만~2,000만 원대에 달하고 스카프 한 장이 700만 원을 넘기도 한다. 스타일보다 품질에 집중한 관계로 로로피아나 제품은 유행을 타지 않아 젊은 세대보다는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주 고객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모스크바에서 열린 크름반도 합병 8주년 콘서트에 약 1,600만 원 상당의 로로피아나 겉옷을 입고 등장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연설을 했다. 전장에서 많은 러시아 젊은이들이 쓰러지고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여파로 국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 값비싼 명품을 두르고 나와 전쟁을 미화한 것이다. 이를 본 러시아인들의 속내는 편치 않았을 것이다. 국민들이 깨어있어야 푸틴 같은 지도자가 다시 등장하지 못할 것이다.
<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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