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주요국들은 17~18세기 시민혁명을 겪은 후 자본주의 아래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로 치달았다. 19세기 발칸반도와 동유럽·러시아에서는 범슬라브주의가 꿈틀댔다. 발칸반도의 슬라브계 소국들이 오스트리아·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르짖었고 러시아가 호응해 확산됐다.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며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도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나자 유럽으로 망명했던 러시아인들은 범슬라브주의에 대응해 유라시아주의를 내세웠다. 이미 17세기에 시베리아까지 확장된 영토를 토대로 유라시아 중심에서 유럽도, 아시아도 아닌 또 다른 세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의 민주주의·개방 경제가 아니라 칭기즈칸처럼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려고 했다. 공산주의 체제인 구소련은 겉으로는 이를 부정했지만 중앙집권 등 유라시아주의와 유사한 정책을 펼쳤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후 러시아는 서구 민주주의를 채택했지만 이념 공황 상태에 빠졌다. 당시 무명 언론인이었던 알렉산드르 두긴이 나섰다. 그는 공동체를 우선하는 러시아를 로마의 후예로, 개인·물질주의를 선택한 미국 등을 카르타고의 후예로 규정하고 ‘악(미국)’을 무찌르기 위해 러시아에 보수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라시아주의에 정교회 근본주의를 결합해 유럽부터 극동·인도양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자는 게 ‘신(新)유라시아주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반동성애법 제정 등의 배경에 이런 사상이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 지정학연구소장과 모스크바대 정치학 교수도 역임한 두긴이 1997년 펴낸 ‘지정학의 기초:러시아의 지정학적 미래’에 잘 드러난다.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도 중국과 유사하게 팽창주의·패권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우리는 지구촌에서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인권 등의 소중한 가치가 파괴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새 정부가 주변국의 팽창주의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려면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가치 동맹의 중요성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오현환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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