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부짖으며 신음하는 넓은 드네프르(Dnepr)강이여. 성난 바람 불어와 버들가지 땅으로 휘감고 집채만 한 파도를 들어 올리는구나. 조용한 강가 적막한 숲 속엔 부엉이 홀로 운다.” 19세기 우크라이나의 민족시인 타라스 셰프첸코는 시 ‘광인’에서 드네프르강을 소재로 민족의 슬픔을 노래했다. 우크라이나는 몽골이 물러난 후 폴란드·헝가리·터키 등으로 분할돼 예속되기도 했고 이들에 저항하다 같은 동슬라브 민족인 러시아와 협력했으나 수세기 동안 러시아의 억압에 시달려야 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의 한과 고통의 역사가 이 강에 녹아 있는 셈이다.
드네프르강은 러시아 모스크바 서쪽 구릉지에서 발원해 벨라루스를 거처 우크라이나를 가로질러 흑해로 흐르는 2,200여 ㎞의 긴 강이다. 강을 따라 비옥한 흑토 지대가 형성돼 오래전부터 농업이 발달했다. 우크라이나가 세계 최대의 철광석 매장량을 갖는 등 이 일대에는 자원도 가득하다. 이 강은 수도 키이우 등 곳곳에 내륙항이 건설돼 북유럽과 흑해를 잇는 물류망 역할도 해왔다. 스키타이가 이곳을 장악했을 때는 아테네인들이 찾아와 포도주·올리브유를 팔고 밀을 사갔다. 바이킹은 이 강의 상류와 북해로 흐르는 다우가바강을 연결한 무역로를 타고 내려와 동로마제국과 교류했다. 현재 강 서부 사람들은 친(親)서방, 동부는 친러 성향이 강해 강이 심리적 경계선이 됐다는 얘기도 있다.
서방 40개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5일 스위스 루가노에서 회의를 열고 러시아의 침공으로 초토화된 우크라이나를 재건하기 위한 ‘루가노 선언’을 발표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북한과 중공의 침공으로 초토화됐다가 50여 년 만에 세계 주요 국가로 발돋움한 한국의 경험이 재건사업 모델의 하나로 거론됐다. ‘한강의 기적’처럼 ‘드네프르강의 기적’이 일어났으면 한다. 하지만 아직도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 불투명하다. 우크라이나의 과거와 현재의 비극은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한다. 국력을 결집하고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을 강화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한다.
<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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