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퓰리처상 수상자 강형원 기자의 한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 (65)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추사 김정희가 1844년에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세한도. [사진 ⓒ 강형원]

가시나무 울타리 밖을 못나가는 중죄인에게 적용되는 유배 형벌인 위리안치(圍籬安置) 귀양살이를 한 추사 김정희 제주도 유배지에 있는 탱자나무 가시. [사진 ⓒ 강형원]

제자 허련(許鍊)이 그린 추사 김정희 초상화. [사진 ⓒ 강형원]
자고로 조선 건국의 학문적 배경이며 중심사상이었던 성리학의 전통에서는 도덕적인 인간의 완성도를 이루려면 덕(德)과 학식이 높은 군자(君子)와 같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가장 멀고 척박한 환경의 유배지였던 제주도로 귀양 보내졌던, 당대의 가장 으뜸가는 학자였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그림 세한도(歲寒圖), 국보 제180호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추사는 힘든 귀양 생활에도 지적인 외로움을 달래주는 우정을 실천한 이상적의 ‘의리’를 돈독한 인간관계를 정의하는 척도로 세한도에서 표현했다.
대학자의 지성과 명필의 필력이 있어야만 가능했을 세한도 그림 왼편에 친필로 적은 긴 발문(發問)에서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제일 늦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드는 것을 안다”라는 이치를 적어놓았다.
우리 땅에서 대표적인 나무로 한옥집이나 가구를 만드는 소재로 가장 많이 쓰이는 소나무는 겨울에도 잎이 시들지 않아 추위에 잘 견디는 대나무, 매화나무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에 포함되었으며, 유교에서는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통한다.
영어에서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라는 표현이 있듯이 소나무는 어려울 때도 떠나지 않고 곁에 남아 있는 친구처럼 영원히 변치 않는 우정을 상징하는 비유가 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사상을 지배한 성리학(性理學)은 성명(性命)과 이기(理氣)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성명의리의학(性命義理之學)을 줄여서 ‘성리학’이라고 불린다.
성리학은 가족과 혈연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회 공동체의 윤리 규범을 바탕으로 조직된 사회사상이다. 3대를 처벌하는 연좌제가 당연스럽게 적용되는 것이 바로 가족과 혈연의 공동체 사고가 기본이기 때문이다.
김정희(1786-1854)의 경주 김씨 가문은 영조대왕의 사위 증조부 김한신(1720-1758) 집안으로 당시 조선사회에서는 최상류층이었다.
어려서 큰아버지 김노영의 양자로 들어가 넉넉한 장손 집안의 금수저로 자란 김정희는 24세에 생원시에 장원급제하고 이후 병조참판인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외교사절단 일원으로 청나라 수도 북경의 여러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그들로 부터 ‘해동 제일의 통유’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추사는 이를테면 한류의 첫 세대인 셈이다.
34세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과 규장각을 거쳤고 충청도 암행어사, 성균관 대사성, 공조참판, 형조참판 등 잘 나가던 요직을 거치면서 살다가, 안동김씨가 세도정치를 하던 당시 세력다툼에 밀려 55세에 제주섬으로 유배되었으며 1848년까지 9년 가까이 제주에서 길고 긴 유배생활을 보냈다.
추사는 탱자나무 가시덤불로 에워싼 울타리 밖을 못나가는 중죄인에게 적용되는 유배형벌인 위리안치(圍籬安置)를 겪으면서도, 제자 이상적이 북경에 통역관으로 다녀올 때마다 가져다준 책을 통해서 그 당시 서양 선교사들을 통해서 들어와 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루었던 새로운 학문 고증학(考證學)을 꾸준히 접했다.
소박한 집 한 채를 사이에 두고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잣나무와 소나무를 그려 이상적의 변치 않는 ‘의리’를 표현한 세한도는 문인화의 정수로 꼽힌다. 필력의 힘과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때 가능한 초묵법(醋墨法) 화법으로 그린 그림이 전문 화가가 아닌 학자가 그렸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다.
유배에서 풀려난 이후에도 숱한 고초를 겪은 추사 김정희는 고귀한 학문과 신의 경지에 이른 예술을 남기고 1854년 10월 71세에 세상을 떠났다.
“권세와 이익으로 합친 자들은 그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사귐이 시들해진다”라고 세한도에 추사 김정희는 적었다. 이 메시지는 오늘날의 이해관계로만 모였다 흩어지는 의리 없는 소인배들에게도 시대를 뛰어넘어 불변의 진리를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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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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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1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한국일보의 이번 칼럼은 벌써 멸개월째 그대로네요. 담당자가 손을 놓고있는데, 이제는 좀 바꿀때가 돼지 않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