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가 쿠바혁명에 성공한 1959년 이후 많은 국민들이 독재를 피해 쿠바를 탈출했다. 1980년 4월 수도 아바나에 있는 페루 대사관에 들어가 망명 의사를 밝힌 젊은이들도 있었다. 카스트로는 페루 대사관이 이들의 인도를 거부하자 대사관 주변 경비원들을 철수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수많은 쿠바인이 대사관에 몰려들었다. 화가 잔뜩 난 카스트로는 쿠바 국민을 향해 “쿠바를 떠나고 싶은 사람은 떠나라”고 소리쳤다. 카스트로의 폭탄선언은 쿠바인의 엑소더스 행렬에 불을 질렀다. 쿠바 정부가 아바나 서쪽의 마리엘 항구를 개방하자 이미 미국에 자리를 잡은 쿠바인들이 고향에 있는 부모와 형제의 탈출을 돕기 위해 크고 작은 보트를 보냈다. ‘마리엘 보트리프트’의 시작이었다. 쿠바 최북단의 마리엘 항구에서 미국 마이애미주 최남단의 키웨스트 섬까지 가는 보트 행렬은 수개월 동안 이어져 모두 12만 5,000명이 미국에 둥지를 틀었다.
카스트로는 쿠바 국민의 반정부 시위가 격화한 1994년 다시 한번 원하는 사람은 쿠바를 떠나라고 외쳤다. 5주 만에 3만 5,000명이 얼기설기 만든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 카스트로는 이때를 가리켜 자신의 인생 가운데 ‘최악의 충격적 순간’이라고 회고했다고 한다. 탈출한 사람 숫자만 놓고 보면 마리엘 보트리프트 때가 훨씬 더 최악이 아니었을까. 마리엘 보트리프트는 외국인 노동자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분석 사례로도 등장했다.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부부는 쿠바 노동자들이 마이애미로 들어오기 전과 후의 현지 임금과 고용률 변화를 추적한 결과 이민자가 많이 유입돼도 고용과 임금에 부정적 영향은 거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근 쿠바에서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엑소더스가 이어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지난해 미국으로 탈출한 쿠바인이 25만여 명으로 1980년 마리엘 보트리프트와 1994년 뗏목 탈출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쿠바가 인구 감소 위기를 겪는 것은 경제가 어렵고 정치적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인구 감소를 막으려면 살기 좋은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한기석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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