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용돈을 받기 위해 아버지 구두를 정성스럽게 닦았던 기억을 떠올릴 중·장년층이 많을 듯싶다. 헤진 러닝셔츠나 구멍 난 양말을 손에 둘둘 말아 마치 구두닦이 장인이 된 것처럼 광내기에 신이 났던 추억이 떠오를 것이다. 당시 우리네 가정집 신발장에는 말표 또는 캥거루 구두약이 한 개쯤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구두약을 보기가 쉽지 않아졌다. 회사에도 운동화를 신고 가는 세상이 되면서 구두약은 ‘추억의 제품’이 되고 있다. 말표 구두약을 만드는 말표산업의 매출에서 구두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5% 남짓에 불과하다.
글로벌 구두약 브랜드도 세태의 변화를 피해 갈 수 없나 보다. 세계 구두약 시장의 절반을 점유하고 있는 ‘키위(Kiwi)’가 영국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최근 보도했다. 사회상의 변화로 정장을 잘 입지 않게 되고 재택근무 문화가 확산되면서 구두 수요가 급속히 줄고 있기 때문이다. ‘신사의 나라’ 영국 국민들에게 구두약은 한때 생활필수품이었다. 그 중심에 영국 등 영연방국가를 주력 시장으로 삼았던 호주 구두약 업체 키위가 있었다.
키위의 출발은 1906년 호주인 사업가인 윌리엄 램지가 멜버른에서 창립한 작은 구두 광택제 제조 회사다. 사명은 뉴질랜드 원주민이었던 부인의 조언에 따라 뉴질랜드 국조(國鳥)인 키위에서 따왔다. 회사 로고에도 키위 새 문양이 그려져 있다. 키위가 세계적인 브랜드로 도약하게 된 계기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이었다. 당시 군화에 광택을 내려는 영국과 미국 군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수요가 폭발했다. 키위를 칠해 광이 나는 영국군 군화를 본 미군들은 키위 구두약을 구하려고 담배 여러 갑을 영국군에게 서슴없이 건넸다고 한다.
키위의 영국 철수 결정은 특정 산업 분야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리 잘나가는 기업이나 브랜드라도 시대 변화에 둔감하고 미래에 대비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현실에 안주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화려했던 지난날은 곧바로 옛이야기가 된다. 100년 기업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기업의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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