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도심 케이블카, 금문교 등을 보고 매료됐다. 그는 특히 항구가 있고 평지가 적은 샌프란시스코의 지형이 블라디보스토크와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모스크바로 돌아온 흐루쇼프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매력 도시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이듬해 ‘빅 블라디보스토크’라는 도시 개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하지만 당시 이 도시는 소련 국적자만 거주·방문이 허용된 폐쇄 도시여서 개발에 한계가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가 극동의 물류 중심지로 발돋움한 것은 소련이 붕괴된 1991년 이후다. 교역이 활발해지고 관광객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급속히 발전했다. 지금은 극동 최대 항구도시로 성장해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 태평양함대 사령부가 주둔 중인 군항이기도 하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원래 중국 땅이었다. 1858년 러시아제국이 힘이 쇠약해진 청나라를 위협해 맺은 아이훈조약에 따라 러시아 영토로 편입했다. 애초 지명도 ‘해삼이 많이 잡히는 작은 어촌’이란 뜻의 ‘해삼위’였으나 러시아가 ‘동방의 지배자’를 의미하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바꿨다.
러시아가 최근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중국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고 홍콩 명보 등이 15일 보도했다. 항구가 없는 중국 동북 지역의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이 6월1일부터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자국 항구처럼 쓸 수 있게 됐다. 중국이 아이훈조약으로 빼앗겼던 이 항구의 사용권을 165년 만에 되찾은 셈이다.
이번 조치에 대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중국의 도움을 받기 위해 큰 선물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가 사실상 중국에 종속된 형태에 접어들었다”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이런 상황을 잘 반영한 듯하다. 중러 밀착이 강화되는 가운데 중국의 팽창주의가 거세질 수 있으므로 큰 틀에서 가치 동맹을 강화하면서 우리 국익을 지키는 치밀한 외교를 펼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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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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