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한국의 모 초등학교 교사가 자기가 가르치는 아동에게 잘못이 있어 여러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벌을 주었다 그 아이의 부모로부터 아동학대죄로 고발당했다. 그런데 교육 당국에서는 징계에 임하여 해직까지 당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그 젊은 교사는 너무나 억울하고 분을 이기지 못해 결국 자살까지 이르는 소동이 벌어졌다.
전국의 교사들로부터 보내온 조화가 온통 학교 주변을 뒤덮다시피 쌓였고 조문의 글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이 어찌 보통 일이라 하겠는가? 이 교사뿐만 아니라 많은 선생님들 가운데 이와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느냐를 추리해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같은 심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학부모들이 자녀들 인성교육에는 오불관언하고 그저 내 새끼 사랑에만 도취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부모들의 교육 경쟁심이 정상을 넘어서 병적이기까지 하다보니 아이들에게 감당치 못할 짐을 지워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성적을 위해서는 과잉투자를 하는 등 그릇된 풍조에 선생도 아이들도 물들어간다.
학교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훌륭한 인물이 된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 그들은 바른 정신을 가지고 성장한 사람들이다. 잘 살게 하는 교육보다 바르게 살게 하는 교육이 훨씬 가치가 있는 것은 그들의 인생에 중요한 방향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나도 80여 년 전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한 적이 있다. 이제 100세가 가까운 나이에도 그때 그 시절 있었던 일이 생각날 때면 마음이 뿌듯해지고 눈시울이 젖어온다.
나는 해방 후 1948년 경기도 주최 교사 검정시험에 합격, 정교사 자격증을 받았고 첫 부임지가 경기도 별내면 소재지 학교였다. 그 해 5학년 담임을 하고 다음 해 6학년 때도 그 반을 계속 담임을 하게 되다 보니 정이 들었다.
당시 한 반 재적수가 80명 중 남학생이 60명가량 여학생은 20명 정도로 혼합반을 이루고 있었다. 각 교실마다 몽둥이가 마련되어 있었고 말썽부리는 아이들이나 숙제를 안해 오는 학생에게는 예외 없이 몽둥이로 종아리를 때리는 것이 예사로 돼 있었다.
요즘 같으면 아동학대죄로 고발 대상감이기도 하다. 어떤 학부모들은 집안에서 말썽만 피운다며 담임선생님을 찾아와서 우리 아이 혼 좀 내서 버릇 좀 고쳐 달라고 당부하는 일도 있었다.
요즘과는 정말 격세지감이 든다. 나는 6학년 담임을 한 지 수개월 후 고향 회천면 덕정 초등학교로 전근 발령을 받게 되었다
약 3개월이 지난 토요일에 여학생 16명이 의정부 역에서 기차를 타고 덕정리 역에 내려 10리쯤 되는 거리를 걸어 내 고향집까지 찾아왔다. 나는 생각지못한 학생손님들을 맞고서 마침 가을철이라 밤과 고구마를 삶아 대접하며 하룻밤을 이야기꽃으로 지새웠다.
내가 떠난 후 몹시 보고 싶은 생각이 발동하여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튿날 이들을 데리고 덕정리 정거장까지 바래다주었다. 기차 창문을 열고 손짓하며 “안녕히 계세요.” 하고 인사하는 아이들에게 나도 손을 들고 “잘들 가라.”고 소리치는 나 자신도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기가 힘겨웠다. 이것이 바로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어진 사제간의 애틋한 정이 아닐까? 요즘은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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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빈/한미충효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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