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감독 빔 벤더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도쿄가’(1985)는 1980년대 경제대국 일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영화 속 일본인들은 골프 연습에 몰입하거나 파친코에 빠져 있다. 골프공과 파친코 구슬의 원형 이미지는 일장기의 태양을 연상시킨다. 골프가 경제 발전으로 보편화한 취미거리라면, 파친코는 전후 부흥 과정에서 퍼진 오락이다. ‘도쿄가’는 도쿄 그림, 즉 도쿄 풍경을 의미한다. 파친코는 외국 감독 눈을 사로잡은 일본의 주요 특징이었던 셈이다.
파친코는 1920년대 처음 등장했다. 1950년대 지금과 같은 형식의 파친코가 자리 잡았다. 카지노를 닮아 우리 눈에는 도박으로 여겨질 만하나 일본법으로는 놀이로 분류돼 있다. 매출 규모는 2020년 기준 22조 엔(약 202조5,000억 원)으로 ‘국민 오락’ 수식이 붙을 만하다. 사행성 짙고 거액이 따르는 산업이니 폭력조직이 곧잘 끼어든다. 재일동포, 특히 재일조선인이 운영하는 업장이 많다. 전후 마땅한 직업을 구하기 어려웠던 이들의 신산한 삶이 엿보인다.
드라마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부산 어촌에서 일본 오사카로 건너간 선자(김민하 윤여정)를 붓 삼아 재일동포의 역사를 돌아본다. 제목은 선자의 아들이 파친코 업장을 운영해 가족을 경제적으로 일으킨 점에서 연유했다. 전후 일본에서 가난과 차별을 견디고 일어선 선자 가족의 눈물겨운 이민사는 세계 시청자들의 공감을 살만 했다. 시즌 1이 2022년 선보인 데 이어 시즌 2가 지난 23일 공개됐다. ‘파친코’는 애플TV플러스가 제작한 시리즈 중 가장 잘 만든 드라마로 꼽히고는 한다.
‘파친코’는 재미동포 작가 이민진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재미동포 수 휴가 각색을 했고, 제작 총괄까지 맡았다. 재미동포 감독 코고나다와 저스틴 전이 시즌 1의 메가폰을 쥐었다. 시즌 2에서는 재일동포 이상일 감독이 연출에 참여했다. 한국 배우 윤여정과 김민하, 이민호, 정은채에 재미동포 배우 진하 등이 연기 호흡을 맞췄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굴곡진 역사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 이민을 소재로 ‘범한국인’이 뭉쳐 만든 드라마가 세계인을 사로잡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