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는 가을이 일찍 찾아온다. 지구를 벌겋게 달궜던 이상 기후도 달력이 9월 하순을 넘기자 아침저녁으로 한기를 전해준다. 산골에서 여름내 함께 햇빛을 나누며 함께 소나기도 맞았던 녹색의 나무들은 어느 사이 단풍 드는 나무와 낙엽 지는 나무, 그리고 끝까지 녹색을 고집하는 나무들로 나누어진다.
산골이라고 하나 심심산천에는 어림없고 본시 공원과 숲이 많아 ‘가든 스테이트’ 라는 별칭이 붙은 뉴저지 중부지역의 배스킹 리지 라는, 해발 335 피트, 미터로는 100 미터가 조금 넘는 산동네다, 단풍 길로 유명한 78번 프리웨이를 따라 동쪽으로 28 마일 가면 뉴왁 공항이 있고 프린스턴은 남쪽으로 24 마일, 한인들이 밀집해 사는 팰리세이즈 파크는 북동쪽으로 45 마일 거리에 있다.
그 산등성이 한복판에 자리 잡은 딸네 집의 마당 한 쪽으로 세로 145인치 가로 50인치씩 나무 테두리를 쳐 놓은 15개의 텃밭이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여기에서 4마일 가량 내려와 산비탈이 끝나는 평지에 있는데 지난 해 6월 이사 온 이후로 특별한 볼 일이 있기 전에는 매일 같이 산길을 따라 딸네 집 텃밭에 올라가는 것이 내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한 여름에는 해 뜨기 전인 이른 시간을 택하다가 요즘은 그보다 늦은 아침 9시 전후에 올라가 간밤에 몰라보게 자란 야채와 꽃들을 둘러본 뒤 잡초 뽑고 열매 따고 물주고 텃밭 주변 정돈하고-- 그러다 보면 2시간 정도는 훌쩍 지나간다. 그사이 학교 가는 손자의 인사를 받고 쉼터 의자에 앉아 딸이 만들어 오는 커피 마시면서 --, 산골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텃밭에 가서 일하는 시간 못지않게 거기 올라가는 15분의 산길이 즐겁다. 울창한 숲을 뚫어 만든 1차선의 좁은 도로라 조심조심 운전하지만 이제는 어느 집 앞을 지나면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보이고 어느 모퉁이에는 사슴이 지나가고 어느 큰 나무 밑으로는 다람쥐들이 놀고 있는 곳인지도 익숙해졌다. 그러나 차가 왕복 한 대씩만 지나게 되는 ‘외나무다리’에 이르면 신경이 바짝 쓰인다.
당초 ‘탈 도시‘니 ’귀농‘이니 하고 주제 넘는 소리를 하며 온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살던 곳을 떠나 이곳으로 오겠다고 하니 딸과 사위가 기왕에 있던 텃밭을 우리들의 소일거리로 확장해 놓은 배려가 기특했고 와서 보니 ‘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난 6년 동안 시골중학교 과목에 농업실습도 있었던 터라 나는 크게 생경하지 않았으나 아내가 생각보다 잘 적응해 주어 마음이 놓인다.
늦깎이 농군 부부가 일군 올해 작황이 풍작은 아니다. 그런대로 방울토마토와 호박, 오이, 상추 등은 여름내 두 집 식탁을 그린 색으로 덮을 수가 있었고 더러는 이웃과 정을 나누기도 했다. 며칠 전 늦가을 수확을 기다리며 수박과 무, 케일, 청경채, 실란트로 등을 조금 더 심어 놓았다.
간혹 호박 넝쿨에서 죽은 줄기를 따낼 때가 있는데 같은 큰 줄기에서 나왔건만 어느 줄기는 지금도 열심히 호박을 키워나가는데 다른 줄기는 처음부터 시들시들 추하게 떨어져 버리는 모습을 본다. 권력도 그와 같아 애초부터 흥하기로 마음먹은 권력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망하기로 작정한 권력도 있는 듯 하다.가을로 가는 길에서, 결실과 나락, 만남과 별리가 공존하는 흥미로운 풍경을 만난다.
<
김용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1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바로 북한의 3대 세습독재자 김정은이가 그쪽이다. 자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남한까지 차지해 보려고 그렇게 외쳤던 우리 민족도 없다, 평화통일도 없다, 삼천리 강산도 없다고 망하기로 작정한 망언을 하니 ,글쎄 노예생활을 하는 북한 동포들에겐 기회가 온것도 같고, 그나 저나 이 수필이라고 쓴 양반 수수한 글을 못 쓰고 잘 된밥에 코 빠드리듯 정치적 복선을 깐글을 썪어놓는데, 독자들이 그렇게 어리석지가 않으니 속보이는 글은 삼가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