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와 함께 H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 길에 주차장을 빠져나오던 렉서스 차량의 사이드미러에 친구의 팔이 살짝 닿는 일이 있었다. 까맣게 코팅된 창이 내려가면서 짙은 화장을 하고 고급스러운 안경을 쓴 여성의 얼굴이 나타났다. 5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었다.
친구는 약간 놀랐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주차장에서는 차량이 보행자를 먼저 살피는 것이 당연하므로, 우리는 그녀로부터 “괜찮으세요? 다치지 않으셨죠?“라는 말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를 위아래로 두 번 훑어보더니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창문을 올려버렸다. 무언가 혼잣말로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친구는 화가 나서 따지려 했으나, 나는 그를 말렸다.
그때 문득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다.
공자가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길을 걷다가 길가에서 대변을 보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공자는 즉시 제자들에게 그 사람을 데려오도록 하여 호되게 꾸짖었다.
제자들은 스승님이 이토록 크게 화내는 것을 처음 본다고 했다.
대변을 본 그 사람은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가리고 달아나버렸다.
얼마 후, 이번에는 길 한가운데서 대변을 보는 사람을 만났다.
제자들은 그 사람이 크게 혼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사람을 피해 돌아가자고 했다.
제자들이 궁금해 물었다.
“스승님, 어찌하여 길 한가운데서 대변을 보는 저 사람은 꾸짖지 않으십니까? 저 사람은 길가에서 본 사람보다 더 나쁘지 않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답했다.
“길가에서 대변을 보는 사람은 그래도 양심이 남아 있어 가르칠 수 있지만, 길 한가운데서 대변을 보는 사람은 양심이 없으니 가르칠 수 없다.”
천하의 공자도 양심 없는 자에게는 어찌할 수 없었다.
충고는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상대에게만 해야 한다는 말이다.
비록 고급차를 몰고 좋은 옷을 입었을지라도, 내 눈에 그 여자는 “길 한가운데 똥을 누는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
이성열/조선족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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