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승리’, 가장 강력한 상징주의의 힘을 보여주는 피터르 브뤼헐의 회화다. 수레바퀴 처형대와 교수대가 난무하는 갈색 톤, 도처에 널린 잿빛의 주검들은 단지 흑사병이 번진 유럽의 모습만은 아니다. 그림 오른쪽 상단은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들이 지천이다. 칼을 높이 치켜든 해골 앞에서 하늘에 올리는 기도마저 무력해 보인다.
죽음의 상징인 해골들이 끝도 없이 몰려든다. 비싸게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남기던 자들을 일거에 쓸어버린다. 램프를 밝히는 쪽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다. 비파 소리가 안내하는 것은 황천길이다. 고급술과 맛난 요리로 가득한 연회가 아직 끝나기도 전이다. 왼쪽 아래를 보라. 붉은 망토를 두른 성주는 아직은 살아 버둥거린다. 하지만 죽음이 손수 모래시계를 들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그가 누렸던 권력과 부귀, 모았던 금화와 은화가 무슨 소용인가.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삶을 에워쌌던 거짓들, 생명으로 착각했던 죽음의 운율, 일상을 흐르면서 쾌락을 사주했던 감미로운 선율의 실체가 드러난다. 생명과 죽음,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눈을 길러야 하는 이유다. 인생은 그사이에서 부단히 선택의 기로에 서는 길지 않은 시간이기에 그렇다. 진실의 반대는 거짓이 아니라 죽음이다. 진실의 편에 서는 것으로 족하다. 타인을 교화하거나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아도 된다. 교화나 쇄신의 요구는 대체로 거짓과 꽤나 관련돼 있다. 그리고 거짓의 끝은 페스트의 그것보다 덜 참혹하지 않다. 이것이 이 강력한 상징주의 회화가 전하는 메시지다.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의 말이다. “누군가 진실과 생명을 택해 그것을 고수한다면, 가치 없는 것에 사랑을 바치기를 거부한다면, 그리하여 세상만사에 이 원칙을 적용한다면 그로서 족하다. 이러한 자세를 견지하는 어느 날 신이 그에게로 올 것이다.”
<심상용 / 서울대학교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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