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중국 항저우시의 관광지 시후(西湖)엔 서양 외국인이 보일 때마다 다가가 말을 거는 한 고등학생이 있었다. 이렇게 익힌 영어로 삼수 끝에 항저우사범대 영어교육과에 붙은 그는 강사로 이름을 날린다. 지역에서 가장 큰 통역 회사까지 꾸리자 시 정부는 미국 투자유치사업을 맡긴다. 태평양을 건넌 그는 시애틀에서 인터넷을 접하고 충격에 빠진다. 귀국 후 웹페이지 제작사에 이어 99년 중국의 첫 전자상거래 기업을 세운다. 바로 알리바바의 마윈(61)이다.
■회사는 초고속 성장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마윈을 만난 지 6분 만에 2,000만 달러 투자를 결정했다. 2014년 뉴욕 증시 상장으로 손 회장의 투자 수익은 3,000배가 됐다. 중국 최고 부자가 된 마윈은 이때부터 ‘재물신’으로 추앙받는다.
■온라인 쇼핑 플랫폼 타오바오와 전자결제시스템 알리페이까지 성공하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그러나 2020년 10월 갑자기 종적을 감춘다. 중국공산당 인사가 참석한 행사에서 “당국의 규제가 혁신을 질식시킨다”고 비판한 게 문제였다. 이는 당 권위에 대한 중대 도전으로 여겨졌다. 괘씸죄로 찍혀 3조 원도 넘는 사상 최대 과징금에 금융 자회사 앤트그룹의 기업 공개마저 취소됐다. 사실상 해외로 쫓겨났고 재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최근 중국 국영 CCTV가 시진핑 주석과 마윈이 악수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최고위급 지도자도 TV에서 사라지면 숙청된 것으로 해석되는 중국이다. 그런데 몇 년간 안 보이던 마윈이 시 주석 주재 간담회에, 그것도 인공지능(AI) 기업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과 함께 나왔으니 의미심장하다. 중국 경제가 마윈을 다시 불러야 할 정도로 힘들다는 신호로도 분석된다. 트럼프 파고를 넘기 위해 기업 사기를 북돋우며 전열을 가다듬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곧바로 마윈은 3,800억 위안(약 75조 원) 투자 발표로 화답했다. 시 주석의 장기 집권 과정에서 마오쩌둥 시대로 퇴보했던 중국이 다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으로 돌아오는 듯한 모습이다. 부활한 마윈의 ‘열려라 참깨’ 주문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시하고 경계할 일이다.
<박일근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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