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여행 유튜버의 짧은 콘텐츠를 보고 크게 공감했다. 북아프리카 모로코 여행 중 ‘중국에서 왔냐’고 귀찮게 묻는 현지인을 재치 있게 되받아치는 장면이었다. “중국인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밝힌 뒤 “당신은 (모로코 옆 나라) 알제리 사람인 것 같다”고 하자, 상황이 바뀐다. 치근덕거리던 현지인이 펄쩍 뛰며 “알제리 아니다. 나는 모로코 사람”이라고 장황하게 설명한다. 국경을 맞댄 사이라면, 우호적인 경우가 의외로 드문 현실을 짧지만 강렬하게 보여준 영상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끼리의 껄끄러운 관계는 전통의 중국 병법 ‘삼십육계’에도 등장한다. 삼십육계 혼전계(混戰計)에 등장하는 원교근공(遠交近攻) 계책이다. 말 그대로 먼 나라와 친선을 맺고, 가까운 나라는 공략한다는 뜻이다. 전국시대 진나라 재상 범수가 제안한 이 계책 덕분에 소양왕은 동쪽 끝 제나라 대신 인접국 위나라를 공격해 영토를 빼앗고, 한나라에도 영향력을 미쳤다.
■원교근공은 21세기에도 지구촌 외교·안보 현장에서 확인된다. 말레이시아는 인접국 인도네시아, 태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의 적국 동티모르, 태국의 비우호국 미얀마·캄보디아와 잘 지내려 한다. 국경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가 러시아, 미국, 베트남 등과 협력을 모색하는 것도 그렇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후 캐나다와 멕시코가 외교적 공세의 첫 대상이 된 것도 미국 본토와 국경을 맞댄 유일한 두 나라이기 때문이다.
■원교근공을 우리에게 투영한다면, 미중 가운데 더 경계할 대상이 어딘지는 자명하다. 국제사회 첩보전은 드라마 속 상상력을 넘어선다. 속성상 ‘성공한 공작’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는다. 통독 이후에야 정치권 수뇌부까지 포함, 서독에서 활동한 동독 첩자가 2만 명에 달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진영 갈등에 ‘중국 위협론’이 소재가 된 건 그래서 문제다. 탄핵 반대 논리를 일축하려는 욕심 탓일까. 찬성 진영에서 ‘중국 위협론’을 극우의 착각으로 몰아붙이는 건 위험하다. 고려 이후 중국의 침략사, 글로벌 전역에서 뚜렷한 중국 견제 흐름은 진실이 어느 쪽인지 보여준다.
<조철환 / 한국일보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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