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재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흑해 및 에너지 시설 관련 부분 휴전에 합의했지만 러시아는 제재 해제를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며 미국과 우크라이나를 계속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25일(현지시간) 러시아 식품과 비료 수출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해제된 이후에야 합의가 이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국영 농업은행과 농산물 수출 관련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를 풀고 이들 기관을 국제 결제시스템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재연결해야 합의의 효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타스 통신은 "제재를 해제하고 러시아 금융 기관을 SWIFT에 다시 연결하는 것은 유럽이 결정해야 한다"며 "미국은 러시아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대서양 건너에 있는 파트너(유럽)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러한 요구는 러시아가 2023년 7월 흑해곡물협정을 파기했을 때 했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러시아는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의 안전한 수출을 보장하는 같은 협정을 2022년 7월 체결했으나 러시아산 식량과 비료 수출을 보장하는 내용이 이행되지 않는다며 협정을 철회했다. 서방이 러시아 농산물 자체는 제재하지 않았지만 관련 금융 기관을 제재해 거래를 방해한다는 게 러시아의 주장이다.

타스 통신은 이 협정이 재개되면 더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휴전으로 의제가 넘어갈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도 우크라이나의 협상력이 관건이라고 짚었다.

이와 관련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전날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협정을 재개하려면 합의를 이행한다는 확실한 보증이 있어야 하지만 러시아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믿지 못한다며 "그러한 보증은 미국이 젤렌스키에게 (합의를 준수하라는) 명령의 결과로만 달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더욱 압박해야만 흑해에서 안전한 항해가 실현될 수 있다고 압박한 것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가 최근에도 계속 러시아 에너지 시설 공격을 시도한다면서 "키이우 정권이 협상과 합의에 도달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거듭 입증된 만큼 우리는 이번 공격 유예가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군은 여전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명령한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 공격 유예를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내놓은 선결 조건에 대해서는 "원래 흑해곡물협정에 포함된 것과 같은 조건"이라며 합의 이행을 위해 미국과 계속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유럽 국가들과 달리 실용주의를 보여주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러시아 식량·비료 수출을 재개하면 세계 식량 안보에 이익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러시아 농업은행 등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이미 성명에서 "러시아의 농업(농산물) 및 비료 수출을 위한 세계 시장 접근을 복원하고 해상 보험 비용을 낮추며 이러한 거래를 위한 항구 및 결제 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즈베스티야는 흑해 관련 협상에 흑해 인접 국가인 튀르키예가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튀르키예는 유엔과 함께 2022년 흑해곡물협정 체결을 중재하기도 했다.

24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러시아 대표로 미국과 협상한 그리고리 카라신 상원 국제문제위원장은 전날 타스 통신 인터뷰에서 "국제사회, 특히 유엔과 특정 국가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계속 대화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흑해에서 휴전하고 에너지 시설에 대해 30일간 공격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고 25일 발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