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땅은 겉으로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땅속 모습을 보면 동네마다 천차만별이다. 사대문 안 도심이나 북한산 기슭 쪽은 화강암이 받치고, 그 주변은 편마암 지대가 감싸듯이 분포한다. 당연하게도 한강과 그 지류 일대 땅은 충적토(흐르는 물에 운반된 흙)다. 아무래도 암석 지대에 들어선 지상구조물이 더 안정적일 수밖에 없고, 충적토가 주류인 곳은 지하수로 인해 싱크홀에 취약하기 마련이다.
■ 문제는 서울 땅의 ‘희소성’ 때문에, 지하공간 개발을 피할 수 없다는 점. 지하철 노선을 늘리고, 고가도로 대신 지하차도를 놓고, 주차장이나 쇼핑몰로 지하공간을 활용하려면 계속 땅을 파야 한다. 그래서 서울의 땅속 상황은 어떤지, 어디가 침하 가능성이 높은지를 파악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땅속을 자기공명영상(MRI)으로 훑듯이 조사하는 일이라 쉽지 않겠다 싶지만, 사실 그런 지도는 이미 존재한다. 지반침하 안전지도다. 도로 1만 ㎞를 조사해 위험도를 1~5등급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 당연히 시민의 알 권리에 속하지만 비공개다. 강동구 싱크홀 사건이 있었음에도 서울시는 여전히 공개 계획이 없다고 한다. “오해와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는데, 실은 ‘집값’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위험도 높은 지역 주민의 민원 세례를 감당할 재간이 없을 것이다. 2년 전엔 지방자치단체가 홍수 대비용 차수판 설치를 지원하려고 했다가, 침수지로 알려질 것을 우려한 주민 반대로 퇴짜를 맞았다. 모두 집값이 안전을 가로막는 본말전도다.
■ 부동산 자산 비중이 늘면서 ‘집값 걱정’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현상은 심해졌다. 과거엔 쓰레기 처리시설이나 화장장 등이 님비의 대상이었지만, 갈수록 경찰서 특수학교 종교시설 임대·청년주택으로 ‘혐오시설’ 범위가 넓어졌다. 최근엔 주민 반대로 공공어린이집 설치가 발목을 잡혔다. 민원인들의 천박함만 탓할 순 없다. 삶의 목표가 ‘부동산 급지 상승’이 된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면 집값 논리는 더 공고해질 것이고, 혐오의 종류와 범위는 확대될 게 분명하다. 부동산 공화국과 혐오 공화국 사이엔, 인과관계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이영창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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