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혹은 삼시세끼 먹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일하며 쉬는 날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특별할 것 없는 삶의 연속이다. 각자의 삶이 있을 텐데 늘 노심초사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인생이 뭐 별거냐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변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큰 것에 의미를 찾으려고 조바심 낼 필요도 없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는데 의미없이 살아간다는 건 허무하지 않을까? 자문해 본다.
누구나 삶의 의미를 무엇에 두는지는 다양하다. 자식이나 가족에게 두기도 하고 권력과 지위, 큰 포부와 직업, 종교에 둔다.
취미와 마인드가 삶의 의미와 연결된다. 인간은 자아가 크고 욕망과 욕심이 많아 자신의 삶에 두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이태석 신부님의 “울지마 톤즈” 에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셨다. 살레시오회 신부님이셨던 이태석 신부님은 부산의 어느 시장에서 어머니의 삯바느질로 키워졌다.
가장 아프고 힘든 어린아이들에게 미개한 문명을 깨우쳐 아프리카 톤즈라는 마을에서 아이들을 위해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는 “미개한 곳에서 성당을 지을 것인가 학교를 지을 것인가 생각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선택은 역시 아이들이 배우고 익히며 깨우칠 학교였다. 그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위해 살다가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돌아가셨다.
그에게서 삶의 의미란 무엇이었을까? 나의 자아를 위해 살아가기보다 많은 아이들을 구하는 일에 나를 던지는 일이었다. 세상사에 부딪히며 살아야 하는 약한 인간으로서 그의 삶은 큰 감명을 주었다.
누구나 좋은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기본적으로 있지만 쉽지 않다.
인간으로 태어나 나를 위한 삶에 집중하는 게 당연한 것이니 말이다.
희생과 봉사로 살다간 그의 삶에 고개 숙이며 반성하게 되는 일이었다.
삶의 마지막 여정은 어디일까?
사람으로 살다가 다시 본 모습으로 돌아가는 삶의 의미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진심과 감사로 봉사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같은 삶을 살다가신 마더 데레사의 의미도 그러하다.
“삶의 의미가 가치있는 목적에 충실하는 것이 행복이다”라고 헬렌 켈러는 말한다.
누구나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지만 무엇을 할지 막연하게 무언가를 기다리며 수동적으로 살아간다. 때론 힘듦과 버거움이 오지만 살아가는 동안 쌓아온 삶의 의미는 절대 헛된 것이 아니다.
마지막 시간은 살아 온 정직한 삶과 감사했던 본 마음만 함께 하는 것이다.
지치고 힘듦이 이어지고 얽히고 복잡한 삶일지언정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보는 게 행복하고 더 값진 인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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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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