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가깝고도 먼 나라다.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비행기로 2시간, 일본 도쿄만큼 가깝다. 연해주로 부르는 프리모르스키주(州)는 일제강점기 수많은 한국인이 이주했고, 항일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다. 심리적으로는 멀다. 1950년 한국전쟁을 배후에서 기획하고 도왔다. 1937년 스탈린은 극동 지역 고려인 18만 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켜 지금까지 대물림되는 이산의 비극을 안겼다.
■ 한러 양국의 첫 만남은 18세기로 역사에 기록돼 있지만, 접촉이 빈번해진 건 1860년 이후다. 청이 러시아에 연해주를 할양하는 ‘청로북경조약’ 체결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맞대게 되면서다. 1884년 조로수호통상조약 체결로 러시아와 공식 외교 관계를 맺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우호국 역할을 하던 러시아가 1904년 러일전쟁에서 패하면서 외교 관계는 단절됐고, 우리는 주권을 일본에 침탈당한다.
■ 한러 관계는 86년이 흐른 1990년 옛 소련과 수교로 정상화된다. 양국 관계는 급속히 발전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전인 2021년 기준, 교역액은 298억8,200만 달러(약 42조6,000억 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러시아는 한국의 9위, 한국은 러시아의 8위 교역국이었다. 첨단기술 협력도 활발했다. 한국형 우주발사체 개발 과정에서 러시아는 최신형 대형 로켓 엔진 ‘안가라’를 넘겨 중요한 기술적 기반을 제공했다. 1995년 불곰 사업으로 도입된 T-80U 전차, BMP-3 장갑차, Metis-M 대전차 미사일 등은 ‘K방산’을 일구는 밑거름이 됐다.
■ 우크라전 이후 러시아는 한국을 ‘비우호국가’로 지정했다. 대러 제재에 동참하고 우크라이나에 인도적 지원을 한 데 따른 대응이다. 이제 전쟁이 종전을 향해 가면서, 천문학적 재건 시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 러시아는 러브콜을 보낸다. 미중 관세 전쟁으로 1위 교역국 중국과의 통상 전망이 불투명해진 한국으로서는 기회다. 심리적 거리를 좁히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지 모른다. 냉혹한 국제질서 아래서도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규칙을 지배한다’는 법칙은 통하는 법이다.
<이동현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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