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1984년 발행된 파리전교회 신부 아드리엥 로네(1927년 사망) 원작의 역본인 ‘한국 순교 복자전’의 재 편집본인 ’한국 순교자 103위 전에서 발취 정리하고 AI가 제공한 내용을 참삭한 글이다. 지난 5월 8일에 선출된 가톨릭 교황 레오 14세는 미국 출신으로 미국사회가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에 힘입어 우리들의 신앙선조들을 살펴보고 그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해 이 글을 쓴다.
18세기말 조선의 학문은 성리학의 지속과 당파적 논쟁이 주류였고 동시에 실학에 준하여 실용적 사고와 사회계혁을 위한 연구도 활발하였다. 당시 한학자들은 봉건국가의 고립된 상항속에서 국내외의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기 위하여 수입되는 서적들을 연구하고 있었다.
한학자, 이덕조(벽)은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종교서적 가운데 가톨릭서적을 우연히 발견하고 이승훈에게 가톨릭교리서를 부탁하였으며 1784년 이승훈은 동지사의 일행으로 중국에 갔는데 그는 북경의 북 천주당을 찾아가서 교리를 배우고 영세를 받음으로써 조선 최초의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그는 귀국해서 친구(양반, 남인학자)들과 교리를 공부하면서 이벽에게 세례 성사를 주었고 학자 권일신도 함께하여 이들 세사람은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 학술적인 관심과 종교적인 호기심이 신앙집단을 이루게 되었는데 사제(신부)가 없는 평신도의 신앙공동체로 발전하였다.
조선에서는 선교사가 들어와서 선교한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자발적 참여와 공부를 통해서 천주교를 받아들인 것이 특이하며 이는 다른 나라들과 구분된다.
그로부터 10년후, 1794년 중국인 신부 주문모가 조선에 들어와서 4천명 이상의 신자들을 만나고 교세를 확장해 나가다가 1801년 체포되어 참수형을 당했는데 당시 이승훈, 정약종 등 많은 신자들도 함께 순교했고 이 신유박해는 조선정부가 가톨릭을 체계적으로 탄압한 첫번째 국가적 박해였으며 유교이념과 충돌을 빌미로 노론 벽파가 남인정파를 숙청할 명분이 되었다.
신유박해는 종교탄압을 넘어 조선후기의 정치권력의 재편과 이념적 갈등 그리고 개인 신앙의 자유가 부각되면서 또 조선천주교가 순교를 기반으로 더욱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되었고 조선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종교의 자유가 점차 인정되면서 천주교는 성장할 수 있었다.
신유박해 이후 조선가톨릭은 사제(신부)없이 지하교회로 30년, 당시 평신도가 사제 파견을 요청하는 서신을 교황 레오 12세에게 보냈고 이 서신은 2년 후 1827에 교황청에 도착되었다고 한다.
1831년 교황청이 조선대목구를 설정하면서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교세를 확장해 나가는중 1839년 4월 조선조정은 사학토치령을 발표하면서 프랑스 선교사(신부 앤베르,샤스탕 그리고 모방)들과 정하상 등 평신도 100여명이 순교하였는데 이를 기해박해(1838-1841)라 이름한다.
당시 조정은 오가작통법을 시행했다. 이는 한 집에서 신자가 발견되면 그 앞뒤와 양옆집 식솔 모두를 체포했다하니 과연 살아남을 교인이 얼마나 되었을까? 그들은 지하교회로, 산속으로 피신해 화전민이나 옹기구이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후 1846년의 병오박해는 조선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신부가 체포됨으로 시작되었으며 그는 1845년 중국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후 그 이듬해 처형되어 순교하였다.
그로부터 20년후 1866년 병인박해는 9명의 프랑스 선교사와 무려 8000여명의 신자가 희생되었고 이는 프랑스군의 병인양요를 촉발하게 되었다. 신미양요(1871)와 겹치게 되어 탄압은 더욱 심하게 되었지만 1873년 흥선대원군이 실각하면서 탄압도 약화되었고 1886년 조불통상조약을 통해 공식적으로 천주교를 인정하게 되었다.
한편 개신교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1885년 4월에 일본을 경유 제물포로 입국했는데 이는 조선인 최초의 개신교 신자 이수정이 1883년 일본의 한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그가 미국의 선교사 조선파견을 요청한 결과였다.
조선은 1895년에 공식적으로 신앙의 자유를 보장했고 가톨릭교회는 본격적인 교세확장을 하게 되었으며 조선 근대화의 전환점도 되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하여 기해박해 순교자 103명을 시성하여 한국에서 성인이 탄생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우리들의 조상은 단군조선 이전부터 “하늘의 뜻”을 받들어 천제를 지냈으며 위로는 하늘님을 섬기며 땅에서는 홍익인간 이념이 아직도 흐르고 있다, 이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우리는 축복받은 땅에서 선택받은 사람들임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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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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