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재정 쌈짓돈’ 전락
▶ 취약계층 지원·성장펀드 출연 등 사회정책 꺼낼 때마다 재원 요구
▶ ‘한달새 4조’ 대출 연체 증가에도 금융안정 외면한채 소비자보호만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1일 생명·손해보험협회장 및 16개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보험의 본질은 소비자 보호에 있음을 명심해달라”며 “상품 설계 및 심사 단계부터 사전 예방적 소비자 보호 체계를 강화해달라”고 주문했다. 시중은행장들과 만난 자리에 이어 또다시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것이다.
실제로 이 원장은 지난달 말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은행이 손쉬운 이자 장사에 치중하고 있다는 사회적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 감독은 △금융시장 안정 △금융 산업 발전 △소비자 보호의 3대 축이 중심이지만 한쪽에 치우쳐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의 산업적 역할은 작게 보면서 소비자 보호를 과도하게 강조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정작 돈이 필요할 때는 각종 기금 출연과 지원을 요구하고 있어 은행을 돈 나오는 화수분 정도로 여기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금융권 쥐어짜기’가 지나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건전성 제고와 주주 환원에 필요한 재원은 외면한 채 은행에 대한 각종 지원 요구만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결제은행(BIS) 바젤Ⅲ의 내부등급법 위험가중자산(RWA) 최저하한선 규제가 최종 목표인 72.5%까지 올라갈 경우 5대 시중은행의 RWA는 약 77조 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12조 원 규모의 자본 확충이 있어야 현 수준의 기업대출과 BIS 자기자본비율 유지가 가능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4대 금융의 상반기 이자이익이 21조 원을 넘는다며 상생 금융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보면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뜻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국내 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은 0.52%로 1년 전과 비교해 0.1%포인트 상승했다. 전월 대비로는 0.12%포인트 하락했는데 이는 5조7,000억 원에 달하는 연체 채권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한 달 새 4조 원이나 늘어난 것으로 대출 연체가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부실 증가에 따른 대손충당금 적립 등을 감안하면 적정 수준의 이익을 내야 건전성을 지키면서 기업과 가계에 자금을 공급할 수 있다”며 “이익이 많이 난다고 여기저기서 곶감 빼 먹듯 하면 결국 은행의 건전성이 추락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공적 자금 지원 등 더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은행권에 사회적 문제 해결까지 떠넘기고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 보상만 해도 은행권에서는 “당혹스럽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올해 1~6월에만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액이 7,766억 원이나 됐다는 점에서 연간 최대 1조 원 수준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융·보험업권이 벌어들인 연간 수익 중 1조 원을 초과한 구간에 교육세율을 현행 0.5%에서 1%로 올리기로 한 것 또한 부담이다. 교육세는 교육재정 재원으로 쓰인다. 금융사의 수익 원천과는 무관하다. 세법학계에서도 금융사의 교육세 납부 타당성에 문제를 제기한 배경이다. 하지만 한 정부 인사는 “교육재정이 빠듯하다는 우려가 많다”며 “기획재정부가 업계와 타협할 여지가 작다”고 설명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이번 세율 인상으로 금융회사에서 걷는 교육세가 전년보다 1조3,000억 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여당이 가산금리에 각종 법정 출연금을 반영하지 못하도록 한 은행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은행권에서는 이에 따라 약 3조 원의 비용이 대출금리에서 빠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배드뱅크 설립을 위해 4,000억 원을 출자해야 하는 것 역시 금융권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이 같은 정책들로 금융 업계에 예상되는 추가 비용만 5조7,000억 원가량으로 추산된다. 보험사와 카드사들이 준비하고 있는 상생기금도 500억 원가량 된다. 여기에 10조 원 이상으로 점쳐지는 국민성장펀드 출연이나 추가 취약 계층 지원 프로그램까지 고려하면 금융권의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나친 상생 압박을 하면 생산적 금융에 쓸 여력이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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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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