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임 한달 반, 종횡무진하는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항로 선점 ‘수도권’ 수준 경제 효과
중도 ‘빙상 실크로드’로 미래 대비
러와 관계 우려에도 “미리 준비를”
연내 이전 앞두고 전직원 맞춤 지원
HMM·SK해운 등 ‘새둥지’ 논의
동남투자공·해사법원 유치도 기대
부산·울산·거제 MRO 단지 조성해
1500억불 ‘한미 마스가’ 동참 구상
미군 함정 일감, 군사 안보상 유리
해양수산부가 2013년 재출범 이래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당장 올해 말 세종을 떠나 내년부터 부산에서 새로운 해양정책을 펼치게 된다. HMM을 비롯한 대형 해운사 본사 이전도 덩달아 추진된다. 이른바 ‘꿈의 항로’로 불리는 북극항로 프로젝트도 본격화한다. 기후위기에 따르는 해양 먹거리 위기 문제도 난제다. 이 모든 숙제는 취임 한 달 반을 넘긴 전재수 해수부 장관의 몫이다. 해양수산 분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후보자 시절 야권의 공세가 무색할 정도로, 그는 여느 장관보다도 종횡무진하는 중이다. 최근 예비비 867억 원을 확보하는 등 갖은 비판을 뚫고 해수부 부산 이전을 관철시킨 게 대표적이다. 내년도 해수부 예산(7조3,300억 원)도 전체 예산 증가율과 같은 8.1% 늘렸다.
전 장관에게 해수부 이전은 시작에 불과하다. 핵심은 북극항로 프로젝트다. 여수·광양을 시작으로 진해와 부산, 울산, 포항을 한데 묶어 북극항로 경제권역으로 부르고, 나아가 ‘해양 수도권’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전 장관은 4일 서울 마포구에서 진행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한국 경제는 언제 꺼질지도 모르는 성장 엔진인 서울 수도권 하나만 달고 있다”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려면 서울 수도권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해양 수도권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SK해운·H라인해운도 부산 이전 논의”
해양 수도권 완성을 위한 부산 이전은 속도감 있게 추진되고 있다. 부산 이전에 따른 해수부 내부 불만과 관련, 이전 추진단에 3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을 신설했다. 전 장관은 이들에게 850명 해수부 전체 직원 한명 한명을 만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맞춤형 지원을 구상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전 장관은 “삶의 터전을 옮기는 문제인 만큼, 아무리 지원을 하더라도 불편함이 ‘제로’(0)가 될 수 없다”며 “최대한 제로에 근접하도록 몸부림치고 있다”고 말했다.
HMM 등 대형 해운사 부산 이전은 다음 달부터 본격 논의가 시작된다. 이전 기업과 이주 직원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특별법 제정도 추진 중이고, 정부·지자체·지역사회·해운업체 등이 참여하는 이전협의체도 운영할 계획이다. 동남투자공사와 해사법원의 부산 유치 근거법안도 국회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해운사 추가 이전 가능성도 열어뒀다. 전 장관은 “HMM을 필두로 사모펀드 한앤컴퍼니가 소유하고 있는 SK해운과 H라인해운까지도 부산으로 이전하도록 논의의 속도를 붙일 것”이라며 “SK해운과 H라인해운은 노조 측과 논의가 상당히 진척됐다”고 귀띔했다. 앞서 SK해운연합노조와 H라인해운해상직원노조는 5월 이재명 대통령의 해운사 부산 이전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해사법원의 경제적 창출효과도 강조했다. 전 장관은 “소송료와 수임료는 해사사건 생태계가 만드는 부가가치의 1%도 안 되며, 핵심은 재판까지 거쳐야 하는 여러 과정”이라며 “예컨대 소송이 걸린 선박은 법원으로부터 압류를 당하는데, 이 경우 해당 선박에 실어놓은 물건을 인도해야 하는 일이 새로 생기고 컨테이너 등 항만 시설을 갖춘 곳은 부산”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해수부·해운사 이전과 해사법원·동남투자은행 유치는 동시다발적, 압축적,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스가 자금으로 국내 선박 수리조선단지 조성”
전 장관이 그린 청사진은 명확했다. 해빙이 녹아 1년에 약 4개월 정도 열리는 북극항로를 우리나라가 선점하면, 10년 뒤 해양 수도권 지역내총생산(GRDP)이 현 서울 수도권 수준인 1,300조 원에 이를 수 있단 것이다. 2023년 기준 부산(114조 원)과 울산(90조 원)의 GRDP 합이 204조 원인 것을 감안하면, 북극항로가 성공할 경우 10년 내 지역경제가 6배 넘게 커진다는 예상이다.
전 장관은 “우리나라 해운·항만 업체 69%, 해운·항만 매출 73%, 해운·항만 종사자 50%가 동남권”이라며 “이 같은 인프라에 더해 해수부가 마중물 역할로 부산으로 이전하고, 해사전문법원과 동남투자공사, 대형 해운사 본사를 해양 수도권에 유치하면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1,500억 달러 규모의 한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 참여 가능성도 강조했다. 미국 함정 보수·수리·정비(MRO)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자금 일부로 부산·울산·거제 조선벨트에 선박 수리조선단지 인프라를 조성하자는 구상이다. 전 장관은 이 같은 아이디어를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게 제안한 바 있다면서 “미국은 조선업 생태계가 무너진 상황인 만큼, 한국에 MRO를 맡길 가능성이 크고 그걸 할 수 있는 장소가 우리 조선벨트”라고 강조했다.
전 장관은 미국도 부산·울산·거제 선박 수리조선단지에 공감할 것이라고 본다. 그는 “전 세계에서 전쟁 시 군대가 자동 개입되는 군사동맹을 맺은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몇 국가 되지 않는다”며 “조선업 생태계 활용 가능성뿐만 아니라 군사안보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나라에 MRO를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IMO 전담했던 해수부, 조선·해양플랜트 비교우위”
마스가를 해수부가 주도할 경우 산업부와의 갈등이 예상된다는 우려도 없잖다. 실제 전 장관은 7월 취임 이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국토교통부의 항만 배후 인프라 개발, 행정안전부의 섬 관련 사무를 포함해 산업부 조선·해양플랜트 부문까지 해수부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능 조정에 대해 “북극항로가 열리게 되면 1차적인 수혜는 조선업종이 받게 될 것”이라며 “우리가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고, 고부가가치 선박 수요를 흡수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 장관은 “설계부터 운항, 폐기에 이르기까지 선박에 적용되는 각종 기준과 규제를 국제해사기구(IMO)가 결정하는데, 수십 년간 IMO를 전담했던 곳이 해수부”라며 “(산업부에 비해) 상당한 비교우위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다만 전 장관은 “죽어도 해수부가 해야 된다, 또는 죽어도 산업부가 해야 된다는 식의 접근 방식은 아니다”라며 “최고의 수준에서 잘 대응할 수 있고 산업을 키울 수 있는 쪽이 해야 된다는 차원에서 정부 내에서 토론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낮은 가능성? 그럼 언제 준비해야 하나”
해수부를 비롯한 산하 공공기관, 물류 기업 등의 부산 이전, 조선·해양플랜트 분야 해수부 이관 문제 등은 결국 북극항로 개척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다. 물론 비판과 우려도 적잖다. 북극항로가 실현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다. △중간 기항지가 부족하고 △연중 항행 가능 시점이 불분명한 데다 △대(對)러시아 제재가 지속돼 추진이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북·중·러가 3일 중국 전승절을 계기로 밀착하면서 한·미·일과의 대결 구도가 심화되는 상황이다. 북극항로는 러시아 연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러시아와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다.
이에 대해 전 장관은 “그럼 언제쯤 준비하면 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이미 중국은 ‘빙상 실크로드’로 북극항로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 장관은 “북극항로가 열리게 되면 결국 중국 상해와 부산항이 최적의 기항지가 될 것”이라며 “길은 열리게 돼 있고 얼음은 녹게 돼 있는데,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가 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히려 전 장관은 절박함을 내비쳤다. 그는 “지금의 서울 수도권 엔진 하나만으로 우리 경제가 10년을 더 가겠는가, 20년을 더 가겠는가”라며 “성장 엔진은 꺼지고, 인구는 고령화되고, 제조업 기반은 무너지고 있는데,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호소했다.
“후쿠시마산 개방 요구 시 ‘안전과 건강’ 대전제하에 대응”
기후위기에 따른 수산업 위기도 고민거리다. 이에 해수부는 내년 290억 원을 포함해 2030년까지 1,620억 원을 투입해 ‘스마트 피셔리(fishery)’를 추진할 계획이다. 스마트 피셔리는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기술을 수산물 생산, 가공, 유통 전 과정에 걸쳐 접목하는 차세대 어업 시스템이다. 전 장관은 “기후위기는 단순 어종 변화를 넘어 어민들 간에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낸다”며 “어업인들이 변화에 따라올 수 있도록 정부가 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으로 불거진 일본 후쿠시마 수산물 개방 가능성에 대해 전 장관은 “지금도 후쿠시마를 포함한 8개 현을 제외하고는 수산물 수입이 되고 있기에, 일본이 추가 개방을 요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만일 일본이 요구할 경우 국민의 안전과 건강이 제일 우선이라는 대전제하에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전 장관이 해야 하는 일, 벌려놓은 일, 하려는 일은 매우 많고 하나하나 중요한 것들이다. 이에 그에게 ‘(장관)역할을 오래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넌지시 던졌다.
“북극항로, 해수부 부산 이전 등은 모두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인프라를 깔아놓는 것까지가 저의 역할입니다. 부산으로 간 해수부가 세종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앞서 그의 “동시다발적, 압축적, 신속하게”라는 말과 오버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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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이대혁 경제부장·정리= 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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