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거주하는 한인들이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 중 하나는 연방정부 셧다운, 즉 정부가 일시 문을 닫는 것이다. 연방정부 산하 공무원들이 갑자기 출근을 못 하게 되고 업무가 마비된다니, 그래도 나라가 돌아가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거의 없는 일이다.
미국의 회계연도는 10월 1일 시작된다. 정부기관들은 예산을 받아야 업무를 지속할 수 있는데 종종 예산 없이, 말하자면 빈손으로 새 회계연도를 맞는 상황이 발생한다. 연방의회 공화 민주당이 예산안을 볼모로 정치적 기 싸움 하느라 툭하면 가결 시한인 9월 30일 자정을 넘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이어지는 것이 셧다운 - 올해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셧다운 되어도 소셜시큐리티, 메디케어, 국방, 이민단속, 항공교통관제 등 국민들의 삶과 안전에 필수적인 업무들은 지속된다. 하지만 그외 다른 업무들이 중단될 경우 생각지도 못한 데서 불편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현재로서 셧다운 가능성은 높다. 트럼프 등장과 함께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해 여야 대립이 극에 달한데다, 트럼프 입김이 도처에서 막강하니 상황이 좋을 수가 없다. 공화당 예산안을 민주당이 반대했으니 연방정부가 셧다운되면 그건 민주당 탓이라고 공화당은 주장한다. 트럼프는 지난 주 연방의회 민주당 대표들과의 회합을 대놓고 거부하며 타협은 없다,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워싱턴 정치 싸움은 하루가 다르게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그 와중에 속이 바작바작 타들어 가는 건 연방공무원들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다. 정부가 셧다운되면 공무원들은 강제로 휴가에 들어가면서 봉급을 받지 못한다. 봉급 없이 얼마를 버텨야 할 지, 어떻게 버틸 건지 공무원들과 그 가족들은 애가 탄다. 게다가 정부가 셧다운 되면 이참에 공무원 숫자를 확 줄여버리겠다는 대규모 감원설이 백악관에서 흘러나오는 판이니 공무원들의 불안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면서 정부효율부 칼날이 한바탕 휩쓸고 가고, 이제 한숨 돌리나 했더니 셧다운 한파 - 연방공무원들에게 2025년은 잔인한 해, 10월은 잔인한 달이다.
미국에서 정부 셧다운이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초였다. 이전까지는 예산안이 의결되지 않아도 이전 해에 준한 예산으로 정부기관들이 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80년부터 ‘예산 없으면 지출 없다’는 원칙이 들어섰다. 최초의 셧다운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시. 대통령이 예산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부기관이 며칠간 셧다운 되었다.
그때부터 이제까지 정부가 일시 업무정지에 들어간 것은 최소한 10번. 짧게는 반나절부터 길게는 한달 이상 지속되었다. 트럼프 집권 1기 때는 정부 업무가 2018년 12월 22일부터 2019년 1월 24일까지 34일간 정지되면서 셧다운 최장기록을 세웠다. 당시 연방정부 산하 80만개 기관 공무원 210만명이 봉급 없이 추운 겨울을 견뎠다.
다른 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정부 셧다운이 유독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종종 행정부와 입법부를 다른 당이 주도하기 때문이다. 행정부는 공화/민주당, 입법부는 민주/공화당이 차지하면 첨예한 정치적 대립이 예산안에 집중되면서 교착상태가 발생하곤 한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숙고와 타협의 정치를 기대하며 이런 체제를 만들었는데,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셧다운은 불가피하게 정치적 경제적 대가를 초래한다. 그 모두를 떠나 당장 집세며 생활비 걱정에 내몰리는 일선 공무원들의 고통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정치의 기본은 경청과 타협이라는 사실을 워싱턴 높으신 분들이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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