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사서 고생 맞다. 깜깜한 새벽길 나설 때, 공항 줄 너무 길 때, 비행 시간 너무 오랠 때 (가도 가도 끝이 없어라), 입국 심사 괜히 쫄 때 (나 지금 떨고 있니). 이거 내돈 내고 뭐하는 짓인가 싶어진다.
그런데도 밝은 얼굴로 한분 두분 모이고 인사를 건네고 인연에 고마워하고 웃음에 설렘이 스칠때, 역시 여행이란 우리 삶의 홍조가 맞지 끄덕이게 된다. 익숙한 세계를 떠나 미지의 세계로의 탐험. 땅따먹기처럼 나만의 영토를 넓히는 일같다.
느리게 걷는 미술관 여행, 미동부에 다녀왔다. 기나긴 입국 심사 대기줄과 최근 미국발 이슈와 팽팽한 긴장을 뚫고서 뉴욕을 누리고 왔다. 도착하기까지의 고된 과정들이 허드슨 강가에 서서 맨하튼을 바라보자 단번에 설렘으로 바뀌었다.
이번 여행에선 친구들, 모녀팀, 홀로팀 등이 함께 했는데, 나이 상관없이 우린 모두 한껏 귀여운 얼굴이 되어 있다. 여행이라는 ‘사서 고생’을 이 맛에 하는 것 같다. 좀 고되고 힘들어도 생의 초심자가 되려고. 주름진 인생 앞에 어린애처럼 반짝이는 눈빛을 하고서 까르르 웃으려고.
우리 호텔은 타임스퀘어 5분 거리에 있었다. 뉴욕의 물가는 듣던대로 너무 비쌌지만, 때로 우리는 향유를 위해 기꺼이 값을 치른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모마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노이에 갤러리 등 유명 미술관을 섭렵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센트럴파크에서의 피크닉이다.
오전에 우리는 트레이더조에 들러 샌드위치랑 샐러드, 과일을 샀다. 미리 준비해간 돗자리에 둘러 앉아 점심을 먹고, 하늘멍, 나무멍... 그리고 이토록 좋은 풍경 앞에서 가장 생각나는 이에게 엽서를 썼다. 나는 지금 누굴 사랑하고 있나, 무슨 말이 하고 싶은가 고스란히 표현되는 시간.
그리고 밤의 타임스퀘어도 잊지 못한다. 낮의 여정으로 피곤해도 지금이 아니면 안되는 순간이 있다. 여기까지 와서 타임스퀘어 광고판을 안볼순 없지. 하루에 1억이 넘는다던데, 온갖 인류가 다 모여있고 정신없는데, 또렷한 우리나라 상표들이 눈에 들어온다. 타국에서는 모두 애국자가 된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 돌이켜보니 여행의 의미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나 신세계의 경험이 아니라, 여행지에서도 그곳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과 인생이 계속되고 있다는, 일종의 생의 다정한 동기화같다. 센트럴파크를 누리던 뉴요커들처럼. 그리하여 돌아온 내 집과 주변의 풍경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이제 알겠다, 이토록 넓어진 것은 내 마음의 영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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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영 (주)즐거운 예감 한점 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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